[버크셔 주총 르포]"화살처럼 곧은 후계자 원해" 루브리졸 인수 파동에 사죄
30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퀘스트센터에서 열린 2011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분위기는 예년보다 무거웠다. 올 1분기 버크셔 해서웨이 순익이 전년동기에 비해 반토막난 데다 측근의 인수기업 사전 주식매입 스캔들로 얼룩져서다.
주총의 하이라이트인 주주대화도 스캔들에 관한 첫 질문으로 시작됐다. 결국 워런 버핏 회장(사진) 개인의 사죄 변으로 시작되며 맥이 빠졌다. 중간중간 버핏의 투자철학이 돋보이는 조언이 이뤄졌지만 작년처럼 풍부하지 못했다.

참석한 3만여 주주들도 축제를 즐기기보다 현안문제에 대해 버핏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러 온 사람들 같았다. 현안 문제에 대한 언급이 마무리된 오후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분위기가 영 썰렁했다. 작년 주총이 끝날 때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편 버크셔 해서웨이의 올 1분기 순익은 작년 동기의 36억3000만달러에 비해 절반 수준인 15억1000만달러으로 줄었다. 일본과 뉴질랜드 지진, 호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보험 자회사가 큰 타격을 입은 탓이다. 자연재해로만 16억7000만달러 손해가 생기며 보험자회사 순익이 12억달러에서 1억3100만달러로 축소된 영향이 컸다.
◇버냉키가 힐튼과 달아났다?= 그래도 버핏 특유의 입심은 살아있었다. 현금운용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던 중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패리스 힐튼과 남미로 도주할 것에 대비해 현금을 안전한 곳에 모셔뒀다"고 익살을 떨었다.
보수적 버냉키가 재기발랄 '플레이 걸'의 대명사 힐튼과 눈 맞을 일은 절대 없다. 미 국채와 나아가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다시한번 익살로 풀어낸 셈이다. 현재 348억달러인 버크셔의 보유 현금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주주의 질문에 "대부분 미국 국채에 묻어뒀다"고 말하며 덧붙인 말이다.
버핏은 식품가게를 운영했던 할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최소한 1000달러는 항상 안전한 예금상자에 넣어놓고 살 것을 가르쳤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버핏의 안전 상자는 미국채라는 말이다. 버핏은 이날 미 정부 채무 문제와 관련, "미국이 자국통화로 국채를 계속 발행하는 한 채무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금, 보는 즐거움 외 할 수 있는 것 없다…상품 투자 부정적= 버핏 회장은 왜 한참 값이 오르는 금이나 다른 상품에 투자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가치를 만드는 자산에 투자하고 싶다"며 "값이 오를 때 흥분만 자아내는 자산에 투자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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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금은 효용가치가 없다"며 "금값이 올라 사람들이 달려드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경탄하고 어루만지는(fondle)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며 "그 돈이 있으면 다른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원유도 "가격방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를 안한다"고 밝혔다.
버핏 회장은 이어 "현명한 사람이라면 상품에 투기하기보다 생산적인 자산에 투자해야 돈을 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 경제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과는 달리 달러 약세는 지속될 것으로 봤다. 버핏 회장은 "달러의 구매력이 점차 하락 것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단지 어느 정도이냐는 수준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내다봤다.
◇아직 사냥중…투자는 계속= 버핏은 이날 2건의 '코끼리급' 기업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규모는 각각 90억달러이며 전액 현금으로 매수할 계획도 언급했다.
이는 앞서 인수한 윤활유 업체 루브리졸건과 비슷한 규모이다. 하지만 버핏은 지난 한국, 인도 등 아시아 순방중 루브리졸이 코끼리급이 아닌 얼룩말급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비춰 회사 현금사정을 고려해 버핏이 인수합병 규모를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버핏은 회사를 인수할 때 현금이 아닌 자사 주식을 동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주가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서다. 이와 관련 버핏은 "진짜로 큰 코끼리에는 손을 뻗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당은 회사 성장 멈췄음을 인정하는 셈= 버핏은 배당금 지급을 묻는 질문에 대해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배당을 1달러주면 투자해서 1달러 이상을 벌 능력을 잃게 된다"며 "사세가 위축돼 투자한 돈으로 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때가되면 남은 현금을 주주에게 배당으로 되돌려 주게 될 것"라고 말했다.
버핏 회장은 "그때가 언젠가 오겠지만 당장은 배당 지급을 선언하면 회사 성장이 멈추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서 주가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석한 찰스 멍거 부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팔아서 자회사 보쉐하임의 보석을 사는 것은 괜찮다"고 농담을 건넸다.
◇화살처럼 곧고 공명정대한 후계자= 유력 후계자로 꼽히던 데이비드 소콜의 루브리졸 사전 주식매입 스캔들은 주총 내내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분위기 전반을 억눌렀다.
버핏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는 "왜 소콜이 그와 같은 일을 했는지 불가사의"하다며 이는 회사 윤리규정을 위반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관리를 못한 자신의 책임도 인정했다. 그는 "회사 윤리규정을 의심할 여지없이 위반한 행위에 대해 왜 그랬는지 따지지 않았던 것이 나의 큰 실수"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가 지난 3월 서한에서 소콜 사임을 밝히면서 분노를 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주주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멍거 부회장도 "그때 보도자료가 역사상 가장 멍청한 자료임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버핏은 또 후계자에 대해서는 "화살처럼 곧은 사람, 윤리적으로 완전하게 공명정대한 사람"을 꼽았다. 이번 윤리 문제가 버크셔와 버핏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흔을 남겼는지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버크셔는 이날 주총 홍보영화에서도 버핏이 1991년 살로먼 브러더스 스캔들 관련 의회 증언대에 섰던 장면도 넣었다. 스캔들을 수습하기 위해 임시회장을 맡았던 버핏은 당시 "신문 1면에 날만한 일을 해서는 안된다. 회사를 위해 일하다 손실을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회사의 명성을 더럽히는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소콜은 이날 변호사를 통해 버핏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며 깊은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법을 위반한 것이 없다고 주장해 양측간 진실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주총은 홍보영화 상영, 버핏의 1분기 실적보고와 현안문제에 대한 모두발언에 이어 오전 9시15분부터 오후4시15분 까지 주주와 마라톤 대화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