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인사이트]통계 밖 비공식 경제활동, 재정에 이중 부담
유럽 불가사의중 하나는 스페인의 실업률이다. 스페인 실업률은 지난 1분기 21.3%를 기록했다. 노동인구 가운데 490만명이 백수란 얘기다.
다른 나라에서 이 정도 실업률이면 폭동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럽다. 유로존 평균 실업률은 9.9%, 극심한 재정난으로 구제금융까지 신청한 그리스와 아일랜드 실업률도 각각 15%에 못 미친다.

하지만 스페인 사회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사회당 정권에 실망해 총선에서 표로 심판했을 뿐 그리스처럼 노조와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는 장면은 보기 어려웠다. 이 수수께끼를 풀자면 스페인의 그림자 경제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섀도 경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공식(informal) 경제를 말한다. 마약밀수, 매춘 등 범죄행위를 가리키는 지하(언더그라운드) 경제로 가지 않더라도 소득 미신고나 소소한 세금 누락이 섀도 경제다. 스페인엔 주변의 다른 나라보다 이것이 광범위하게 만연돼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인 실업률에 거품이 있다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비공식 취업을 계산하지 않은 결과다.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실업급여를 신청한다. 실제로 직업을 갖고 있지만 등록을 안 한 경우다.
스페인 실업률은 2006년 사상 최저인 8.5%로 내려갔다. 그러나 실제 실업률은 더 낮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당시 구인난에 직면했다. 미국은 9%의 실업률도 높다고 아우성인데 스페인은 8.5%의 실업률로 거의 완전고용을 달성했던 셈이다.
◇PIGS 위기, 그림자경제에도 책임= 전문가들은 흔히 PIGS 국가들의 방만한 경제운용이나 유로존의 태생적 한계를 재정위기 요인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림자 경제의 부작용도 상당했다.
스페인의 그림자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9%로 추정된다. 이탈리아는 21~25%, 그리스의 경우 GDP의 1/4(25%)이다. 스페인 비공식 취업자가 실업자로 잡히면 소득신고가 누락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상응하는 고용보험을 내지 않는 고용주도 생긴다. 정부로선 세수가 줄고 불필요한 실업급여도 줘야 하므로 이중부담이다.
이탈리아에선 불법 이주자들이 하루에 수십만 점씩 만드는 의류가 전세계로 수출되지만 이런 노동자가 몇이나 되는지, 해당기업들이 적절한 고용보험을 내는지 알 길이 없다. 정부로선 손해가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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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이 나라들에 지하경제가 극성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남유럽은 각 지방의 개성이 강하고 중앙정부들이 비교적 약해 '공식경제'가 힘을 쓰기 어렵다. 이탈리아는 남북간 발전 격차에 따른 지역감정이 여전하고 스페인엔 일부 지방이 분리독립을 추진할 정도다. 로마 루이스 대학의 피에르토 라이클린 교수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는 법치, 정부신뢰, 사회적 자본(소셜 캐피탈)이 모두 빈약하다는 역사적 특징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비교적 가벼운 세금 누락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은 워낙 뿌리가 깊고 국민정서도 이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요국의 그림자 경제를 조사해 온 오스트리아 요하네스 케플러 대학 프레드리히 슈나이더 교수는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영역이 그림자 경제"라며 "이게 멈추면 스페인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둘째 지하경제는 세율 등 규제가 강하면 더 커지는 속성이 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 4월 사회보장비를 제대로 내지 않는 기업에 무거운 과징금을 매기겠다며 불법고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리 루즈 로드리게즈 노동부장관은 정부가 실업자 보조금으로 2007년부터 지금까지 1130억유로(1650억달러)를 썼다고 밝혔다.
구제금융 신청설이 불거질 정도로 경제가 악화되자 더이상 이를 묵인할 수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단속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2년마다 집계한 주요국의 그림자경제는 2006년보다 2008년에 감소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2010년 다시 증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살림은 어려워졌는데 징세는 엄격해지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공식 경제활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재정부담+국부유출, 고용 양성화로 풀어야= 또다른 이유는 부쩍 늘어난 불법 이주이다.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이 올들어 대거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밀려들었지만 수년간 계속된 중국인 노동자들의 불법이주도 문제다.
최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도시 프라토의 어느 주차장에선 버려진 중국인의 시신이 발견돼 주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2주 새 이런 시신이 3구째다. 현지경찰은 이 세번째 사망자가 중국인 불법이주자 시송빈(29)이며 약물과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가 일하던 옷 공장에서 일을 더 많이 시키려고 약을 맞았으며 마침내 그가 죽자 공장의 실상이 알려질까 외딴 곳에 시신을 버렸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공장지대로 흘러든 불법이민자들이 단속을 피해 '메이드 인 이탈리아' 패션을 만든다. 대표적인 곳이 프라토이다. 인구 18만 가운데 중국인이 3만5000명으로 추정되고 이 가운데 절반은 불법이주자다.
현지경찰은 지난해에만 320곳의 기업을 적발했고 부동산 144곳과 6000대 넘는 기계도 압수했다. 하지만 단속은 그 때뿐이어서 이내 많은 불법이주자들이 공장으로 돌아와 일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회 문제 못지않게 국부 유출도 심각하다. 이탈리아 마피아소탕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프라토에서 중국으로 50억유로가 송금됐다. 불법이주자들이 본국에 돈을 부친 것이다. 현지에선 이탈리아중앙은행이 이 문제에 눈을 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슈나이더 교수는 "그림자 경제는 어려운 시기에 쿠션(완충) 역할을 한다"며 일부 긍정적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하기엔 부작용이 너무 크다. 라이클린 교수는 세율은 낮추고 고용에 따르는 기업부담을 줄이는 것이 간단하면서도 유일한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용어]그림자경제= 그림자 경제는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만큼 부르는 말도 다양하다. 숨겨져 있다고 해서 히든 이코노미(은닉경제), 암시장(블랙마켓)을 연상시키는 블랙 이코노미라고도 한다. 이밖에 지하 경제, 회색 경제, 미등록 경제라는 별칭도 있다.
이는 경제질서와 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후진국 또는 옛 공산국가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보편적인 경제현상이다. 유럽에선 옛 공산권인 발트3국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전통적으로 지방분권 성향이 강해 정부역할이 제한적인 남유럽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