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에 객장 트레이더 급감…뉴욕거래소, 상징적 장소 역할에 그쳐

10년전인 2001년 9월11일, 맨해튼 남단 트윈타워(쌍둥이 빌딩)를 주타깃으로 한 이른바 9.11 테러공격은 일시에 미국을 마비시켰다. 인근 월스트리트도 무너진 건물더미와 흙먼지에 기능이 '올스톱'됐음은 물론이다. 금융가일대의 통신이 두절되고 '빅보드(뉴욕거래소의 별칭)'도 문을 걸어 닫아야 했다.
그로부터 1주일도 안된 9월 17일 '빅보드'는 다시 문을 열었다. 구호와 복구의 '영웅'이 된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힘찬 오프닝벨을 울렸다. 뉴욕시를 지역구로 둔 척 슈머 상원의원과 루돌프 줄리아니 당시 뉴욕시장도 그들의 옆에 있었다. 사상 최대의 테러공격 피해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미국의 저력을 보여준 강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빅보드는 이후 결코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빅보드는 나름의 '트라우마'를 겪으며 급격히 변모했다. 이전 활기찼던 객장은 금융활동의 허브에서 이제 상징적 역할에 그친 장소로 바뀌고 말았다. 오프닝벨은 여전히 중요한 이벤트지만 기업 수장들이나 유명인사들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빅보드에서 25년을 일한 밥 커닝햄은 CNBC에 "사람들이 없는 요즘 객장의 모습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커닝햄의 말처럼 최근 빅보드에선 최근 객장 트레이더들이 급감했다. 한때 최대 3000명에 달했지만 약 1200명으로 크게 줄었다. 인터넷을 비롯해 유무선 통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 시대다. 초단타매매가 성행하는 요즘 객장에 전화로 주문을 내거나 종이에 주문을 적어 처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개인투자자들 대부분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한다.
남아 있는 객장 트레이더들은 대부분 주요 기관투자자들로부터 대형 블록 주문을 받아 처리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이 곧 객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거래소를 소유한 NYSE유로넥스트는 한해 전체 매출 중에서 주식 트레이딩 매출이 20%에도 못 미친다. 객장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미미하다. 지난해의 경우 주식 100주 중에서 단 5주만이 객장 트레이더들의 손을 거쳐 거래됐다.
객장 트레이더의 급감은 지난 10년 동안의 급격한 기술 발전에 따른 것이지만 시기적으로는 9·11 이후 가속화됐다. 커닝햄은 "9·11 이후 한번의 공격으로 붕괴될 수 있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변화의 또다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객장의 변화 속도가 충격적"이라며 "엑소더스의 속도와 강도가 너무 빠르고 세다"고 말했다.
빅보드의 한 트레이더는 자신의 모습을 '유물'에 비유했다. 그는 "시장에선 변화에 불평하면 안된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라며 변화를 수긍했다. 객장이 관광지가 된 것도 변화된 모습이다. 영화처럼 고성이 오가는 객장의 모습을 기대하는 패키지 관광객들은 빅보드의 오프닝벨과 클로징벨 이벤트를 떼 지어 관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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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보드는 또다른 변화에 직면해 있다. NYSE유로넥스트가 도이체뵈르제와 합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빅보드 객장의 존재감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뉴욕거래소 대변인은 객장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트레이더는 "지난달 지진과 허리케인을 겪었지만 객장 문은 닫히지 않았다"며 "객장 트레이딩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진이 일어나자 몇몇 동료들이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담배를 피우려 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농담을 섞어 빅보드의 생존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