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경영, 亞 지배구조의 폐단일까

가족 경영, 亞 지배구조의 폐단일까

최종일 기자
2011.10.16 14:45

[글로벌 인사이트] 亞 가족 기업 연구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광풍이 몰아쳤을 때 인도네시아 재벌인 바크리 가문이 소유한 6개 기업의 주가는 자카르타 증시가 패닉 셀링(공포 매도)에 빠지자 거래가 중지될 정도로 급락세를 보였다. 이들 기업은 부채 문제와 맞물려 당시 시가총액이 약 30% 빠졌다.

↑ 부미리소시스는 부채문제가 발생, 올들어 주가가 26% 하락했다.
↑ 부미리소시스는 부채문제가 발생, 올들어 주가가 26% 하락했다.

바크리 가문은 파산을 막기 위해 인도네시아 최대의 광산 운영사 부미리소시스의 자산 일부를 부랴부랴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올 들어 바크리 가문은 부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주력기업인 부미리소시스의 주식 40% 이상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가족경영의 폐단...문어발식 사업확장, 상속 분쟁

승승장구했던 바크리 그룹이 수년 전부터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은 차입을 통해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다보니 경기 변동 시기에 외부 충격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는 형제간의 상속 분쟁, 기업 지배구조 스캔들 등과 함께 가족 경영(family business)의 폐단으로 언급되는 것들이다.

↑ 인도 기업가 정신의 표본이라고 일컬어졌던 암바니 가문은 2002년 창업주가 별세한 뒤 형제간에 유산 상속 다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릴라이언스그룹은 올해 인도 재계 1위 자리를 타타그룹에 내주기도 했다. 사진은 릴라이언스그룹의 회장 무케시 암바니.
↑ 인도 기업가 정신의 표본이라고 일컬어졌던 암바니 가문은 2002년 창업주가 별세한 뒤 형제간에 유산 상속 다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릴라이언스그룹은 올해 인도 재계 1위 자리를 타타그룹에 내주기도 했다. 사진은 릴라이언스그룹의 회장 무케시 암바니.

유독 아시아 기업 중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많다. 마카오의 카지노 왕이라 불리는 스탠리 호는 재산 상속을 놓고 올해 가족들과 법적 분쟁을 벌여야 했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의 부동산개발업체 선흥카이(Sun Hung Kai)를 운영하고 있는 홍콩의 궉 가문도 2008년 이후 승계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인도에서도 릴라이언스 그룹의 창업자 디루바니 암바니가 별세한 뒤 형제간 재산 상속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됐고 급기야 사세가 위축되는 모습도 보였다. 형 무케시와 동생 아닐은 법적 다툼 끝에 에너지와 금융, 통신 등에 이르는 계열사를 분배면서 분쟁은 일단락될 수 있었다. 한국기업들도 매년 가족 간 상속 분쟁이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가족 경영의 폐단 때문에 아시아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가족 경영 모델이 붕괴되고, 외국자본이 더 나은 지배구조와 전문경영인 체제를 찾아 아시아 시장에서 이탈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고 최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앞서 2000년 11월 '아시아 가족 경영의 하락(Downside of Family-Business Culture in Asia)'이란 기사에서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 실린 논문을 인용해 "아시아 가족 기업 문화에는 용납될 수 없는 관행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최근의 아시아 위기를 넘어서 거시경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가족기업은 亞 시장 성장의 근간"

하지만 실상은 사뭇 다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신흥시장조사연구소가 아시아 10개 신흥국의 상장 가족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달 초 발표한 '2011년 아시아 가족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약 50%를 차지한다. 기업의 가치에서는 전체 시가 총액의 약 32%를 구성한다. 기업 수에 비해 시총가는 적은 셈이다.

하지만 성장세는 빼어나다. 가족 기업이 전체 시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이후 10년만에 6배나 증가했다. 또 10개국 가운데 7개국에서 평균주가 상승률을 뛰어넘었다. 누적 수익률은 2002~2003년 인터넷 버블 위기와 2008~2009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261%에 달했다. 또 이들 가운데 38%는 10년 이내에 상장돼 가족 경영 기업이 시간이 갈수록 성장세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가족 경영은 아시아 민간 기업의 이윤 창출에서 무척 중요한 원천이면서 아시아의 경제에서 중요한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주로 1세 혹은 2세가 경영하는 아시아의 가족 기업은 4, 5세대까지 내려간 유럽이나 미국의 가족 기업보다 업력이 짧다 보니 훨씬 더 성장 지향적이며 이로 인해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너 경영인은 또 핵심 보직에 가족을 선임함으로써 위험 수반 작업에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수익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장기적인 헌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안정 효과와 오너의 책임 경영도 장점으로 꼽았다. 시장 침체기에 빈번한 자사주 매입 등으로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짜고 투자에 나선다는 설명이다.

↑ 싱가포르 최고 부자였던 응 텡 퐁(黃廷芳)은 지난해 사망하기 전 싱가포르와 홍콩에 있는 사업체를 두 아들에게 무탈하게 넘겼다.
↑ 싱가포르 최고 부자였던 응 텡 퐁(黃廷芳)은 지난해 사망하기 전 싱가포르와 홍콩에 있는 사업체를 두 아들에게 무탈하게 넘겼다.

보고서는 또 가족 경영이 남아시아에서는 전체 상장사의 65%, 북아시아에서는 37%를 차지한다고 밝히면서 "경제 기여 측면에서 아시아 경제의 대들보"라고 전했다. 국가별로는 인도가 67%로 가장 높았고, 중국은 국영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 때문에 13%로 가장 낮았다.

보고서는 가족 경영 기업을 기업의 주식이나 자산 20%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가족이나 가족의 일인이 경영까지 맡고 있는 3568개의 사업체를 대상으로 했다. 조사 대상국은 한국, 중국,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완, 태국 등 10개국이다.

◇승계문제를 해결한 가족기업

분명, 아시아 가족 기업에서 심심치 않게 보여지는 가족간 분쟁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불확실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 기업만 승계 계획에서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컨설팅업체 PwC보고서는 전세계 가족 기업 중 절반가량은 승계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아울러 아시아 기업 중에도 경영 승계가 훌륭하게 마무리한 기업들도 있다. 부동산 재벌이자 싱가포르 최고 부자였던 응 텡 퐁(黃廷芳)은 지난해 사망하기 전 싱가포르와 홍콩에 있는 사업체를 로버트와 필립, 두 아들에게 무탈하게 넘겼다. 그가 남긴 재산은 112억달러(약 13조원)였다.

분란을 사전에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기업도 있다. 제철과 자동차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인도의 타타그룹은 내부에 위원회를 2010년 발족시키고 후계 경영인 발굴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회장인 란탄 타타는 오는 12월 은퇴할 예정이다.

인도의 인포시스 테크놀로지의 창립자들은 자식들의 회사 근무를 원천 봉쇄했다. 홍콩의 물류·유통업체 리앤펑은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3세인 빅터와 윌리엄 펑이 여전히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지만 기업 지배 구조에서 박수를 받고 있다.

아시아 가족 기업 자체를 폄하하거나 가족 경영을 지양해야 할 지배구조라고만 지적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FT는 가족 기업의 성공 원칙으로 △'소유, 통제, 경영의 기능을 분명히 하라' △'효과적인 기업 지배구조에 관심을 쏟아라' △'승계 작업을 철저히 계획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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