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티브 잡스의 모방론

[기자수첩]스티브 잡스의 모방론

김국헌 기자
2012.03.14 14:43

타임 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도용할까봐 걱정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OS) 맥의 GUI를 모방해 `윈도`를 개발했다.

당시 MS는 애플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격노한 잡스는 빌 게이츠를 애플 본사로 불러들였다. 잡스는 "당신을 믿었는데, 이제 우리 걸 도둑질하다니!"라고 격분했다.

그러나 게이츠는 침착한 목소리로 "글쎄요, 스티브. 이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그 집에 침입했다가 당신이 이미 훔쳐갔단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라고 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잡스는 MS의 윈도 개발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잡스는 게이츠에게 "좋아, 좋아.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거랑 너무 똑같이 만들진 마요"라고 답했다.

미국 정보기술(IT)업계의 양대 산맥 사이에서도 기술 도용 문제로 설전이 벌어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잡스는 창작권을 존중하기보다 도용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생전에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IT업계에서는 먼저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고객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기술로 포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제록스가 먼저 GUI를 개발했지만, GUI로 돈을 번 기업은 애플과 MS였다.

IT업계의 흐름을 볼 때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와 애플간 특허소송전은 소모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IT업계에선 종종 특허소송을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은 도를 지나쳐, IT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전례를 보고 많은 IT업체들이 소송장을 들고 법원으로 달려갔다.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삼성전자(220,500원 ▼5,500 -2.43%)와 애플이 특허권이나 지적재산권을 경쟁 제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IT 분야에서 특허권 남용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IT업계에선 상대방의 발목을 거는 경쟁보다 먼저 달려나가는 승부가 더 절실하다. 승자는 누가 먼저 개발했느냐보다 누가 많은 선택을 받았느냐로 판가름난다. 소모적인 소송전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사용자 친화적인 제품 개발에 투입했다면, 삼성전자와 애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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