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99% 머저리의 저항

[기자수첩]99% 머저리의 저항

홍혜영 기자
2012.04.03 14:56

'고객이 봉' 골드만삭스 오명의 교훈

최근 미국 월가 최고 유행어는 '머핏'(muppet)이다. '머저리, 멍청이'란 뜻의 이 단어가 새삼 미국 금융가에서 회자되는 건 골드만삭스 런던의 한 임원이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공개 사표를 던지면서다.

그는 칼럼에서 "골드만삭스 내부에선 공공연하게 고객을 '머핏'이라고 부르면서 고객의 이익은 뒷전인 채 얼마나 수수료를 뜯어낼 지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고백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금융회사 직원들이 '고객님'을 "아, 그 호구? 봉이지 뭐. 수수료는 얼마나 준대?"라고 하는 거다.

당장 파장은 컸다. 골드만삭스는 애써 "한 직원의 비뚤어진 소견"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해당 글은 이미 언론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진 뒤였다.

기사가 나간 지 2시간도 안 돼 한국 골드만삭스에서 전화가 왔다. 회사와 관련된 자료를 보낼 테니 기사에 반영해달라는 것이었다. 골드만삭스는 해당 임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과 함께 과거 '골드만삭스가 선호 직장 1위로 꼽혔다'는 등의 설문자료를 잔뜩 첨부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기자들에게까지 부리나케 연락이 왔으니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이번 일의 수습하는 데 얼마나 '글로벌'하고 '스피디'하게 대처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미국인 언론들은 흥분하기보단 침착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식의 비아냥이 대부분이었다. 월가 금융회사들이 위험 상품을 마구 팔아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460조 원에 이르는 정부 돈을 집어 삼킨 지 채 4년이 안됐다. 아들 딸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아버지는 실직해서, 집집마다 집 사느라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해 허덕이는데 이들은 어느새 흑자로 돌아섰다며 보너스 챙기기에 악착같다.

한국은 어떤가. 잊고 있지만 우리 역시 과거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160조 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저축은행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또 혈세를 부어야 할 판이다. 그런 와중에 경영진들은 친인척한테 은행 돈을 먼저 빼돌리기 급급했다. 금융 자본가들의 눈에 고객은 그저 머저리로만 보였을지 모른다. 결국 그런 탐욕과 오만이 결국 '99% 머저리들의 저항'을 부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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