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논문 베낀 대통령? 뭘 그 정도 가지고…

[기자수첩]논문 베낀 대통령? 뭘 그 정도 가지고…

홍혜영 기자
2012.04.03 16:22

침통한 표정으로 의회에 들어선 대통령이 비장한 목소리로 사퇴 의사를 밝힌다.

"제 개인적인 문제가 국가 통합이 아닌 분열의 상징이 된 상황에서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저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어 의원들이 일제히 기립 박수로 대통령 사퇴를 환영한다. 다름 아닌 '머나 먼' 나라 헝가리 얘기다.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격 사퇴을 표명하며 그 사유로 밝힌 개인적인 문제는 바로 자신의 논문 표절 사실이다.

슈미트 대통령은 지난 1992년 발표한 논문의 80% 이상이 다른 사람의 것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박사 학위를 박탈당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잇따라 시위를 벌이며 대통령을 비난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슈미트 대통령은 "표절 문제와 대통령직과는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석 달을 버티다 결국 대통령직마저 불명예스럽게 '박탈'당하게 됐다.

언뜻 "뭘 그 정도 가지고 대통령직까지 내놓느냐"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헝가리 시민들은 단호했다. 대다수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남의 논문을 베낀 사람의 도덕성을 어떻게 믿고 대통령 자리에 앉히냐는 거다.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앞서 지난 달 독일에서는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이 박사 논문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거짓'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결정적인 이유는 도청 사실 자체보다는 이를 덮으려고 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위장 전입에 부패 의혹, 성희롱 전력 정도는 국회의원 당선이나 공직 수행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논문 표절 의혹은 이제 대수롭지 않을 정도다. '가짜, 거짓, 말 바꾸기, 은폐'에 무감각해지다보니 서로 간의 신뢰도 무너진 지 오래다.

하지만 '어차피 믿지 않으면 되니까'로 무시하기엔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거짓말이 예삿말이 되다 보면 더 큰 잘못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국민들의 권리는 먼지처럼 사라진다. 헝가리 국민들은 이런 진리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총선과 대선은 어느 때보다 소중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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