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 '열녀비'가 세워진 이유는 열녀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드물었기 때문이라는 한 역사학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열녀가 흔하면 일부러 상을 줘서 기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란 설명인데 역사의 '반어법'을 잘 보여준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 훌리건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묘하게 이 비유가 떠올랐다. 센카쿠 열도를 두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강경일변도를 걷고 있는 일본의 모습에서 되려 일본의 아픔이 느껴졌다.
한 때 미국을 제치고 경제대국 '1위'자리를 위협했던 나라가 일본이다. 지금은 '잃어버린 20년'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여전히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경제 원조를 저개발국에 제공하고,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경제적 기여와는 별개로 일본은 숙원사업인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입성에 번번이 미끄러졌다.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파워가 그만큼 부족하다.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속 반대해 온 나라가 중국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이기 때문이다. 센카쿠 열도는 일본과 중국의 '악연'이 표면화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도 극우성향으로 꼽힌다. 취임 후 방위성에 보안강화를 지시했고,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동남아 국가들과의 연대도 꾀하고 있다. 또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집단 자위권 문제를 협의하겠다는 대담한 발언도 내놨다. 심지어 일본 방위성이 F-15 전투기를 센카쿠 열도 인근 섬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국제사회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감정이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며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경제성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민족주의가 고양된 상황에서 경제성장에 실패하면 피해자 의식이 고조돼 주변국과의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주 20조엔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장기적 저성장이 일본 우경화의 원인이라는 나이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의 부릅뜬 두 눈이 왠지 '강하지 않은 자의 강한 척'인 것 같아 슬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