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차 세계대전 연합군 노르망드 상륙 작전 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승세는 연합군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유럽 동쪽에서는 소련군, 남쪽에선 미국·영국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서 남부 이탈리아로 북상하면서 독일군을 몰아부치고 있었다.
하지만 서부전선에선 독일군의 주력이 그대로 유지된 채 북해와 대서양 해안지대를 장악하면서 전쟁이 답보상태에 빠지게 된다. 연합군은 전쟁종결을 위해 독일군의 방어망을 뚫고 유럽 대륙에 깊숙히 진격할 수 있는 교두보가 필요했다.
결국 그 해 12월 루스벨트·처칠·스탈린 등 미·영·소 수뇌들이 회동한 테헤란 회담에서 프랑스 해안지대에 대한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실시가 결정된다. 회담 이후 미군과 영국군은 아이젠하워 장군을 정점으로 합동사령부를 신설하고, 검토 끝에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해안을 상륙지점으로 정한다.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이란 명칭으로 불린 이 작전 시행일이 바로 72년 전 오늘(1944년 6월 6일)이었다. 'D-데이(Deliverance Day)'로 불리는 이날 대규모 원정대가 영국 도버 해안을 출발해 유럽 대륙으로 향했다. 지상 최대의 상륙작전이 개시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총지휘 아래 미국 제1군, 영국 제2군, 캐나다 제1군으로 이뤄진 연합군이 이날 새벽 북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연합군은 이날 수송기 2316대와 수많은 글라이더로 공수부대를 독일군 배후에 투하시켜 프랑스 내륙에 거점을 확보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항공기총 1만3000대와 함선 6000척을 동원해 노르망디 해안을 초토화하면서 7개사단을 상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훗날 이 날 노르망디 해안의 모습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에서 참혹하게 묘사된다. 연합군은 상륙 첫 날부터 7월 2일까지 인원 약 100만명, 물자 약 57만톤, 각종차량 17만량을 프랑스에 상륙시킨다.
작전의 규모만큼이나 사상도 컸다. 상륙 작전 당일에만 연합군 3000명이 전사했으며 이어진 전투를 포함하면 연합군 4만4000명, 독일군 5만4000명, 프랑스 민간인 2만명이 각각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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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서부 전선에서 순식간에 패배해 유럽 대륙으로부터 퇴각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성공으로 독일로 진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어진 몇 차례 전투를 통해 프랑스에 주둔하던 독일군 대부분은 포위됐고, 그 해 8월 25일 자유 프랑스군이 파리를 해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