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수영장 안의 힘센 코끼리를 상대하는 법

[광화문]수영장 안의 힘센 코끼리를 상대하는 법

베이징(중국)=원종태 베이징 특파원
2017.03.22 05:50

1990년부터 14년 간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고촉통 전 총리는 중국을 수영장에 갑자기 등장한 ‘코끼리’로 비유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제 이 힘센 코끼리는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장 안의 물과 공간을 빼앗을 힘이 있다. 제한된 면적의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해야 하는 아시아 작은 국가들 입장에선 이 코끼리가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코끼리가 수영장을 진흙탕으로 만들거나, 애꿎게 다른 국가들에게 물을 뿜어대도 꼼짝없이 당해야 한다. 코끼리에게 수영장 안의 규칙을 지키라는 말은 입조차 뻥긋하기 힘들다.

‘도광양회’ 기치 아래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며 잠자는 척 했던 중국이 이제 더 큰 코끼리가 돼 우리 옆에 버티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로 중국이 한국에 온갖 보복을 쏟아붓는 요즘, 이 수영장의 코끼리 비유가 처절하게 와 닿는다.

그렇다면 이 코끼리는 사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 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차하얼학회 자오밍하오 연구원은 아시아타임즈 최근 기고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한국 사드 배치(X-밴드 레이더)와 지난해 11월 체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미국-일본-한국이 만든 ‘작은 나토’로 본다”고 밝혔다. 나토는 구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의 군사 동맹망으로 작은 나토는 곧 중국을 겨냥한다는 주장이다.

싱가포르 라쟈라트남 국제연구원 리차드 비친거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기고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미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현실이 됐다”며 한국과 일본 뿐 아니라 대만이나 싱가포르, 호주 등도 일련의 방어에 나섰고, 이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곧 미국 주도의 범 아시아 방어체계가 구축된다는 의미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사드 보복을 “중국이 한국에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 정도로 단정 짓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다. 이미 이 코끼리는 “자신의 핵심 이익에는 어떤 타협도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젠 선언에 그치지 않고 한국 같은 약소국은 얼마든지 괴롭히는 ‘실제적’ 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 힘은 경제 보복이어서 한국에게 더 뼈저리다. 지금까지 중국을 상대로 한 경제적 이익에 즐거워만 했지 ‘이경촉정’(경제적 접근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함)이라는 중국 전략에 뒷통수를 맞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코끼리의 말 못할 위기감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 때문은 아니다. 사실 수영장 안에는 더 큰 코끼리가 한 마리 더 있었다. 미국이다. 이 두 마리 코끼리들은 한때는 서로 상대가 안돼서, 한때는 서로 필요해서 공존을 선택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코끼리가 갈수록 힘이 세지니 미국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는 수영장을 차지 하기 위해 서로를 더 견제하고, 싸우는 일도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두 코끼리는 경제·정치·군사·지역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아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 양상으로 바뀔 수 있다. 그 어떤 코끼리에게서도 착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이제 우리는 수영장 안의 두 코끼리를 냉정하고 차분하게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 정부는 이 거대한 코끼리들 사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안보’를 뛰어넘는 ‘안보 전략’을 세워야 한다. 경제 전략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진보’나 ‘보수’로 국론이 갈라져서는 절대 안된다. 더 이상 우리끼리 싸울 시간이 없다. 코끼리들만 상대하기도 벅찬 것이 힘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국가 수장인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사드가 아닌 미국의 사드를 배치하려고 안달을 낸 군부나 정부 관계자들의 진짜 이유만큼은 국민들에게 꼭 알려줬으면 한다. 그래야만 함부로 우리 패를 보여주며 코끼리들을 자극하는 것이 얼마나 살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인지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패도 바로 여기에 있다. 코끼리들의 싸움은 사드를 넘어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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