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전 세계에 걸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참여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가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를 보면 하위 50%가 전체 자산의 2%를 나눠 가진 반면, 상위 10%가 차지한 부는 76%에 달했다. 더구나 상위 10%의 부는 증가하고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1월1일 기준 자산 600만 위안(약 11억4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부유층은 508만 가구에 달했다. 특히 이들 가구의 자산 합계는 전년 대비 9.6%가 증가한 160조 위안(3경400조원)을 기록하는 등 상위 계층으로의 집중도가 강화됐다.
게다가 중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상속·증여세가 없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한편으로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지난 14일 중국 부자보고서를 발표하는 후룬연구원(胡潤硏究院)이 '2021년 후룬재산보고서'를 발표했다.

후룬연구원도 재밌는 스토리가 있다. 영국인 루퍼트 후지워프(52)는 1990년대 후반 중국으로 건너와 아서앤더슨 상하이지사에 일하다가 중국 부자순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신문을 아무리 뒤져도 관련 기사가 없길래 직접 중국 부자순위를 작성했다. 그 순위가 미국 포브스지에 영문으로 실리고 큰 호응을 받게 되면서 아예 창업에 나섰다. 후룬연구원은 중국을 대표하는 부자연구소로 성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유층 기준은 자산 규모 600만 위안(약 11억4000만원) 이상이며, 올해 1월1일 기준 508만 가구에 달했다. 전년 대비 1.3% 증가한 규모다.
자산규모가 1000만 위안(약 19억원) 이상인 '상위 순자산' 가구는 2% 증가한 206만 가구, 자산 1억 위안(약 190억원) 이상인 '초상위 순자산' 가구는 2.5% 늘어난 13만3300가구를 기록했다. 3000만 달러 이상(약 370억원)을 보유한 '글로벌 초상위 순자산 가구'도 8만8500가구에 달한다. 이들이 바로 중국판 슈퍼리치다.
중국 부유층의 지역별 분포도 살펴보자. 수도인 베이징과 경제수도로 불리는 상하이의 부유층이 각각 72만8000가구와 62만1000가구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양대 도시에 중국 전체의 자원이 몰려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선전, 광저우 등 광둥성에 위치한 도시가 3·4위를 기록했다.

주의해야 할 내용은 지금부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600만 위안 이상을 보유한 가구의 자산 합계가 9.6%가 늘어난 160조 위안(3경400조원)을 기록하면서 상위 계층으로 돈이 쏠리는 정도가 강화됐다. 160조 위안은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배에 달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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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부의 대물림'이 갈수록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10년 이내 18조 위안(약 3420조원), 20년 이내 49조 위안(약 9310조원), 30년 이내에 92조 위안(약 1경7500조원)이 다음 세대로 이전될 것으로 분석했다.
재밌는 건 중국은 아직 상속·증여세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재산권에 대한 규정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이유도 있고 지난 90년대 이후 경제개발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부가 축적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부의 대물림이 이뤄진 사례가 적은 것도 원인이다.
그래서인지 삼성 상속에 관한 뉴스가 종종 중국 신문에 등장한다. 2020년 12월 삼성가(家)가 고(故) 이건희 삼성회장 회장의 유산에 대해, 역대 최대규모인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납부한다는 뉴스가 중국 신문을 장식했다. 기사에는 한국 상속세는 전 세계에서도 높기로 유명하며 과세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할 경우 상속세율이 50%에 달한다는 내용도 실렸다.
2021년 11월에는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보유중인 삼성전자 주식 253만주를 담보로 1000억원을 대출받았다는 뉴스가 실렸다. 중국언론은 삼성가가 유산 26조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12조원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며 "삼성그룹의 장공주(임금의 누이)마저 대출로 세금을 낼 정도이니 유산세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만하지 않냐"고 언급했다.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 뉴스가 중국에서 주목을 받는 건 중국 부유층 수가 500만 가구를 돌파할 정도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민영 기업 중 상당수가 가족기업이며 아직 지분을 증여한 비중이 낮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중국 기업가들은 중국의 상속세 도입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중국도 상속세 관련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4년 세제개혁 때 상속세를 징수가능한 세금 목록에 포함시켰다. 1996년에는 '제9차 5개년 계획과 2010년 장기 비전목표'에서 상속세와 증여세를 단계적으로 징수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에는 중국 최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경제블루북'에서 부동산세와 상속세 도입을 촉구했다.
상속세 도입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갈린다. 일부는 중국이 상속세를 도입할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산 600만 위안 이상 부유층이 508만 가구로 증가하는 등 부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제14차 5개년 계획(2021~25)' 기간 중 상속세와 증여세 징수를 촉구하는 등 상속세 시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편 상속세를 징수할 경우 중국의 부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고 인재에 대한 흡인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20일 미국 포브스지의 실시간 세계 부호리스트에 따르면 중국 최대 부호 중산산(68) 농푸산췐(農夫山泉) 회장의 재산은 655억 달러(약 80조원)에 달했다. 나중에 중산산의 아들 중슈즈(34)가 8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물려받을 때 상속세를 얼마나 내야 할까? 아마 중국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