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레드라인·고조된 불확실성…"자본 좌표 바뀐다" 밀컨의 경고

무너진 레드라인·고조된 불확실성…"자본 좌표 바뀐다" 밀컨의 경고

로스앤젤레스(미국)=심재현 특파원
2026.05.05 17:05

[밀컨 인사이트: 글로벌 질서를 읽다]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4일(현지시간)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콘퍼런스는 6일까지 열린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4일(현지시간)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6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콘퍼런스는 6일까지 열린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글로벌 자본시장의 풍향계로 불리는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이 주목한 키워드는 '구조적 변곡점'이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저물가·저금리·효율성 중심의 질서가 저물고 전쟁과 지정학적 위기, 인공지능(AI) 혁명이 결합한 '안보와 기술의 시대'가 자본 배치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적시생산 가치 종말"… 안보가 지배하는 자본 지도

하비 슈워츠 칼라일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시간) 열린 콘퍼런스 대담에서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공식이었던 '적시생산' 시스템의 종말을 선언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시적인 변수가 되면서 재고가 비효율이 아닌 안보자산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안보가 국방을 넘어 에너지, 데이터, 핵심 인프라 사수로 직결되고 자본은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론 오한리 스테이트 스트리트 CEO 역시 "절대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이 전쟁으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본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3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중동 국부펀드 자본이 자본 수출보다는 자국 내 안보와 인프라 구축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런 방향 전환이 글로벌 자본 비용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자재 시장 급변… "단기 등락 아닌 체제 전환"

콘퍼런스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원유, 가스, 금속, 농산물을 포함한 원자재 시장에 대한 시각 교정이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의 움직임이 수급 사이클에 따른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았다.

기후 위기·전쟁으로 위협받는 농산물과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이 단순한 상품을 넘어 전략적 생존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존 그레이 블랙스톤 CEO는 특히 투자자들이 무형의 기술적 불확실성 속에서 손에 잡히는 실물 자산 시장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에너지 전환과 전쟁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창고, 에너지 시설, 데이터센터 같은 실물 자산이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와 전쟁… 자산배분 공식 뒤집혀

AI 혁명 역시 국가 안보와 결합하면서 자산배분 전략을 뿌리부터 흔드는 변수로 지목됐다. 다니엘 심코위츠 모건스탠리 공동대표는 "현재 AI 자본 배치는 전체 사이클의 10~15%에 불과한 초기 단계"라며 "AI와 국가 안보 기술, 언어 모델 기술이 하나로 수렴되면서 자본은 이 혁신을 주도하는 인프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의 향방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시장의 독보적인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구조적 변화 속에서 생겨나는 '틈새 기회'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코위츠 공동대표는 "유럽의 경우 전체적인 성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자본이 필요한 기업들 사이에서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의 기술력과 자본시장 구조 개선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콘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한 자산운용가는 "과거에는 가장 싼 곳을 찾아 자본이 움직였다면 이제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통제 가능한 곳을 찾아 자본이 재배치되고 있다"며 "수익률 숫자가 아니라 정치·정책적 안정성과 물리적 안보가 새로운 투자 좌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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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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