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핵심산업으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의 인재 논쟁이 치열하다. 정부가 반도체학과 등 첨단산업 관련 학과의 정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지만 늦은 감이 있다.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컴퓨터공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10년 이상 55명으로 묶여 있다가 최근 두 번에 걸쳐 8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이 "800명이 돼도 모자라다"고 밝히는 등 관계자들은 여전히 정원확대를 바라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첨단산업의 인력난이 심각한데, 이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 증원을 제한한 영향이 크다.
반면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우리의 경쟁 상대로 부상 중인 중국은 인재 양성에 거침이 없다. 중국 인재 양성을 대표하는 '야오반'(姚班)과 중국 대학의 반도체 대학원 설립 붐을 통해 중국의 인재 양성 노력을 살펴보자.
야오반은 2005년 칭화대가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인 '튜링상'(Turing Award)을 수상한 야오치즈(姚期智·76) 교수를 초빙해서 만든 과정으로 정식명칭은 '컴퓨터과학 실험반'이다. 이 과정은 미국 MIT, 스탠포드 대학 등 글로벌 일류대학 출신과 대등하거나 더 뛰어난 수준의 컴퓨터공학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베이징대와 더불어 중국 최고 명문대로 손꼽히는 칭화대에는 "중국 인재의 절반은 칭화대로 모이고, 칭화대 인재의 절반은 야오반에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몰린다는 의미다.
야오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야오치즈 교수를 알아야 한다. 야오 교수는 1946년 상하이에서 출생했으나 국공내전 기간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옮긴 후 대만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으로 유학간다. 197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26세의 야오치즈는 3년 뒤 일리노이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
이후 야오치즈는 MIT, 스탠포드, 버클리, 프린스턴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알고리즘과 복잡도 이론을 연구했으며 중국계로는 유일하게 2000년 튜링상을 수상했다. 2004년 야오 교수는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양전닝의 초청을 받고 귀국길에 올랐으며 칭화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컴퓨터과학 실험반'을 설립한다.

야오반은 야오 교수가 직접 만든 교과과정에 따라 진행되며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2005년 설립 후 지금까지 14회에 걸쳐 44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2021년말 기준, 야오반 학생이 학부과정에서 발표한 논문은 모두 358편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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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치즈 교수는 2019년에는 인공지능(AI) 인재 육성을 위해서 '즈반'(智班)을 창설했다. 칭화대학은 인공지능 분야 논문 발표실적이 글로벌 선두 수준인데, 앞으로 더 많은 논문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야오반 졸업생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 졸업생 중 15명이 미국 스탠포드대, 프린스턴대, 카네기멜론대 등 글로벌 선두대학에서 재직 중이며 11명이 칭화대, 베이징대 등 중국 명문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2011년 설립된 중국 인공지능업체 메그비(Megvii)의 창업자 역시 야오반 출신이다. 메그비는 2015년 3월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가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IT전시회 세빗(CeBIT)에서 선보인 안면인식 결제기술을 개발한 기업이다.
야오반 출신 3명이 공동 창업했다는 사실에 투자자가 몰렸으며 알리바바, 폭스콘 등이 지금까지 약 11억 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메그비는 상하이거래소의 커촹반 상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60억 위안(약 1조14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지난 4월 베이징시 정부에 의해, 무인 로보택시 시범운영을 허가받은 포니AI(Pony.ai)도 야오반 출신이 창업한 회사다. 2016년 설립된 포니AI는 중국과 미국에서 로보택시 운행을 준비 중인 기업으로 미국 실리콘 밸리, 중국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에 R&D센터가 있다.
포니AI는 로보택시 개발을 위해 현대차, 토요타, 중국 광저우자동차 등과 협력 중이며 2022년 3월 진행된 시리즈 D 투자유치에서 약 85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중국 반도체산업인재발전보고'에 따르면 2020년 중국 반도체 산업 종사인원 수는 약 54만1000명이며 2023년 전후로 수요가 76만650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2023년이 되면 반도체 인력이 20만명 이상 부족해지는 셈이다.
중국 정부가 발빠르게 나섰다.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국무원 학위위원회, 교육부가 '반도체 학과 및 공정'을 2급 학과에서 1급 학과로 승급하면서 해당학과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중국의 반도체 인력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2021년에만 칭화대학, 베이징대학, 화중과기대학 등 14개 대학이 반도체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대학들이 앞다퉈 반도체 인재 양성에 나섰다.
대학과 기업간의 산학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항공항천대학은 화웨이와 반도체 혁신센터를 설립했으며 올해 초 칭화대학은 윙텍(Wingtech)과 공동으로 차량용반도체 R&D센터를 설립했다.
우리가 규제에 묶여 있는 동안, 우리의 경쟁자인 중국은 인재 양성을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