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푸틴의 무너진 천장

[우보세] 푸틴의 무너진 천장

김희정 기자
2024.03.27 05:13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노보 오가르요보 관저에서 열린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테러범들이 왜 우크라이나로 도피하려고 했는지, 그곳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AFPBBNews=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노보 오가르요보 관저에서 열린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테러범들이 왜 우크라이나로 도피하려고 했는지, 그곳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AFPBBNews=뉴스1

옆 집 마당이 탐 나 담장을 도끼로 내려치니 정작 내 집 천장이 무너졌다. 전부터 흔들렸던 천장이지만 집단속 제 때 못한 책임은 지기 싫다. 애꿎게 옆 집 주인을 손가락질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콘서트홀 테러가 급진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자행됐다고 처음 인정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가 일찌감치 자신의 소행임을 밝혔는데도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정부 관리들과의 공개 방송 회의에서 "문제는 누가 득을 보느냐. 2014년부터 우리 나라와 전쟁을 벌인 사람들의 일련의 시도일 수 있다"고 우크라이나를 가리켰다.

증거는 없다. 용의자 4명은 가혹한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채 법원에 섰다. 어떤 자백이든 푸틴이 원하는 답변이 나와야 할 판이다. 미국,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 IS의 테러 공격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IS 연계수사를 위해 러시아에 협력을 제안했다며 공격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건 실수라고 일침했다. 안보에 '비생산적인' 선택이란 지적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경찰관들이 순찰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에서 발생한 테러와 이슬람국가(IS)의 소행론이 제기되면서 안보 경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다./AP=뉴시스
지난 2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경찰관들이 순찰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에서 발생한 테러와 이슬람국가(IS)의 소행론이 제기되면서 안보 경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다./AP=뉴시스

잊고 있던 'IS의 불활'은 러시아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위험이다. 프랑스는 이날 하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보안 경보를 격상했다. 모스크바 외곽 콘서트홀 테러를 감행한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호라산(ISIS-K)은 최근 몇 달 간 프랑스에서도 수차례 공격을 시도했다. 프랑스는 수도 파리에서 2015년 바타클랑 극장 테러로 130여명이 사망하는 등 지하디스트의 공격을 받은 아픔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는 6월 유로 2024 축구 선수권 대회를 앞둔 독일도 테러 위협이 "심각한" 것으로 본다다. 지난주에만 IS 대원 2명이 스웨덴 의회 공격을 도모한 혐의로 동부 튀링겐주에서 체포됐다. 영국도 최근 ISIS-K의 위협이 높아져 경계 태세를 높였고 네덜란드 역시 지난해 12월 이후 위협 수준을 "상당한" 수준으로 높였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있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현장에서 주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지난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있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현장에서 주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러시아 내 테러 위험을 사전 경고한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변수를 만났다. ISIS-K는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부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지만,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ISIS-K는 지난 1월 이란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의 무덤 근처에서 100여명의 사망자를 낳은 테러의 배후로 추정된다. 추후 중동의 긴장을 고조시킬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엔 글로벌 공조가 필요하다. 전제조건은 신뢰다. 그러나 테러 발생 3일 전 푸틴은 미국의 사전 경고를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서구의 시도"라며 무시했다. 알렉스 영거 전 영국 외교안보국 MI6 국장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공에서 눈을 뗐다"고 꼬집었다. 결과는 무너진 내 집 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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