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인들 "은행을 왜 가?"…집에 현금 565조원 쌓아놨다

일본 노인들 "은행을 왜 가?"…집에 현금 565조원 쌓아놨다

김종훈 기자
2025.08.28 16:00

지난해 발행한 신권 교환율 현저히 낮아

지난 4월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무관함./사진=뉴시스
지난 4월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무관함./사진=뉴시스

일본에서 은행 계좌에 들어가지 않은 채 보관 중인 현금이 60조엔(565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약을 중시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고령층이 현찰을 대량 보유한 탓으로 추정된다. 은행으로 들어가 기업, 가계로 돌아야할 돈이 돌지 못하면 경기는 활력을 잃는다.

28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지난달 발간한 '새 일본은행권(신권 지폐) 유통상황'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일은이 신권 유통 상황 조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7월 발행한 신권이 예상만큼 시중이 많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 일은은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신권 발행을 결정하고 1000엔, 5000엔, 1만엔 신권을 시중은행에 유통시켰다. 그러나 구권을 신권으로 교환한 양은 20년 전의 30% 수준이라고 한다.

고액권인 1만엔을 신권으로 교환한 양은 20년 전의 20% 수준으로 특히 낮았다. 1000엔권과 5000엔권 교환량은 20년 전의 40% 정도였다. 고액권일수록 은행으로 유입되지 않은 채 어딘가 잠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은은 신권 교환량이 낮은 이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은행 예금에 들어가지 않은 채로 가정 등에 보관 중인 현찰이 그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현찰을 은행계좌에 입금하지 않는 이유는 상속세 등 과세 회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고령층의 저소득 문제와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일은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개인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2230조엔으로 사상 최대였는데, 그중 60%를 60세 이상이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60대가 21.5%, 70대 이상이 38.3%로 70대 이상 금융자산 비중이 더 높았다.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데다 안정을 중시하는 풍조 탓에 절약을 강조한다. 여기에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심화된 연금 부족, 의료비 지출 증가 문제로 고령층은 더욱 절약을 강조하게 됐다. 게다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인플레이션을 예방한다며 정부가 예금을 봉쇄한 적이 있다. 2007년 일본 우체국이 민영화된 뒤에는 만기 후 20년2개월이 지난 우체국 예금은 국고로 귀속돼 원칙적으로 찾을 수 없다는 법령 때문에 논란이 불거졌다. 일련의 사건들로 금융기관을 향한 일본 고령층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집안에 감춰진 현금은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국채를 매입하는 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유동자금은 기업과 가계 소비를 거쳐 은행으로 들어가고 은행은 이 자금을 근거로 또 대출을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실제로 공급된 유동자금보다 더 큰 경기촉진 효과가 일어나는데, 이를 통화승수 효과라고 한다. 집안에 감춰진 현금은 이런 효과를 만들 수 없다.

일본 사회에서도 현금을 움켜쥐고 쓰지 않는 행위가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일례로 무조건 절약하기보다 힘들게 모은 자산을 기반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는 것이 자신과 사회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제로카츠'(0의 삶, 다 쓰자)가 유행 중이다. 현금 자산이 많은 고령자가 치매에 걸림으로써 나타나는 경제 문제를 꼬집는 '치매 머니'라는 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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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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