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4일(미국 동부 현지시간) 전화통화에서 서로 상대국가를 방문하는 '셔틀외교'를 사실상 확정하면서 G2로 꼽히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정세가 변곡점을 맞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출범 직후 무역전쟁으로 시작한 양국의 경제·안보 전면전이 지난달 말 부산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확전 자제와 휴전의 '스몰딜'을 넘어 상호패권을 인정하는 '빅딜', 즉 새판짜기 수순에 진입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전화통화 이후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제 큰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 게 눈길을 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중재 과정에서도 드러나듯 트럼프 대통령은 강대국이 각자 세력권을 구축하는 국제 질서를 선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경제·안보 문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면 '큰 그림'이 어느 수준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경제·안보 지형은 물론, 국제 정세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양국에 깊숙이 발을 딛고 선 한국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이례적으로 이날 두 정상의 통화 사실을 먼저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 발언'을 앞세워 공개한 게 단서가 될 수 있다.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중국에 대만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을 언급하면서 대만을 둘러싼 중일간 군사적 충돌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서 대만 문제를 포함한 미중의 안보 빅딜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주한미군 역할론과 맞물린 대만 문제를 미중 양국이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는 한국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SNS 게시글에서 대만 문제를 빼놓은 채 "큰 그림"만 앞세운 것을 두고 일각에선 동맹국의 안보 우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베이징의 입장'을 이미 수용해버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아시아소사이어티의 로리 다니엘스 전무이사는 "대만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중국의 입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의사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향후 몇 달 간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빅딜과 함께 경제 분야의 접점 모색도 관심사다. 주요 원자재와 부품의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비롯해 첨단기술과 이를 겨냥한 규제 등의 문제까지 앞으로의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당장은 미국과 중국이 각각 쥐고 있는 첨단반도체와 희토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낮지만 '가드레일'(안전판)이 어느 수준까지 마련되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밑바닥 수준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부산 회담 한달만에 전격적으로 핫라인을 가동한 것은 각자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둔 행보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지방선거 참패와 엡스타인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화제 전환과 핵심지지층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과 통화 직후 "우크라이나-러시아, 펜타닐, 대두 및 기타 농산물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며 "위대한 농부들을 위해 중요한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미국 농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 중 하나다. 시 주석 역시 무역 전쟁에 따른 수출 감소와 실업률 증가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