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형상 [PADO]

시간의 형상 [PADO]

PADO 국제시사문예지
2026.02.14 06:00

19세기 이래 선형적 시간 개념은 서구인들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편집자주] 시간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막상 정의하려 들면 난해한 개념도 드물 것입니다. 누구나 시간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이내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호주의 온라인 매체 이온(aeon)은 지난 1월 16일 자 에세이를 통해 시간이 직선처럼 흐른다는 '선형적 시간관'이 19세기 무렵 정착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영국 더럼대학교의 철학사가인 필자는 이러한 시간관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여러 역사적 현상과 결부해 설명합니다. 하지만 현상 이면에 존재했을 철학적 지각 변동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역사적 사건들이 선형적 시간관을 낳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선형적 시간관이 역사의 흐름을 그러한 방향으로 추동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간의 속성이 선형적인지 순환적인지, 혹은 그 화살이 미래를 향하는지 과거로 흐르는지에 대한 논쟁은 인류 지성사의 오랜 화두였습니다. 앙리 베르그송이나 버트런드 러셀이 탐구했던 시간의 실재성, 즉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도 실재한다는 개념 또한 곱씹어 볼 만한 대목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진보한다"라는 믿음이 보편적 진리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믿지만, 고전적 세계관 속의 이상향은 언제나 과거에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타락하며, 옛 성현의 지혜를 따라야만 비로소 이상향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시간을 공간의 한 차원으로 해석한 찰스 힌턴의 '4차원' 개념도 흥미롭습니다. 이는 어쩌면 강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또 다른 발로일지 모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인간의 인식 속에서만 흐를 뿐, 실제로는 하나의 공간 안에 이미 공존하고 있다는 관점은 모든 것이 신의 구상 속에 있다는 섭리와 맥을 같이 합니다. 모든 것이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며, 선형적 시간관만큼이나 인류를 지배해 온 강력한 사유였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시간의 흐름은 과연 절대적인 것일까요. 시간이란 무엇인지,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묵직한 화두를 던져 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픽=PADO (생성 AI 사용)
/그래픽=PADO (생성 AI 사용)

"시간은 선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은 말한다.

우리는 과거가 우리의 뒤로 한 줄로 늘어서 있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는 현재라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살을 타고 간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이러한 그림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그 본격적 뿌리는 겨우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 개념은 이제 서양 사상에 너무나 깊이 자리 잡아서 시간을 다른 어떤 것으로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 새로운 표현 방식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서부터 시간 여행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보자. 파피루스 두루마리와 자줏빛 무화과 속에서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창조 신화인 '티마이오스'는 시간을 천체의 움직임과 연결했다. 신

은 "시간의 탄생"을 위해 태양, 달, 그리고 다른 별들을 "창조"했다. 그것들은 하늘에 원을 그리며 일, 월, 년을 만들어낸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다른 천체들의 "유랑" 또한 시간을 만든다. 그들의 모든 방랑이 "함께 완료될" 때, 그들은 "완전한 한 해" 안에서 "완결"을 이룬다. 이 "대년"(Great Year)의 끝에 모든 천체는 그들의 순환을 마치고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는 수천 년에 걸쳐 우주의 한 주기를 완성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이러한 시간관 또한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학파는 시간을 그들의 '영원 회귀' 교리와 연결했다. 우주는 무한한 순환을 겪으며 불 속에서 끝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간관은 순환적이다. 시간은 사건이 발생하고, 지나가고, 다시 발생하는 반복적인 주기로 구성된다. 이는 자연의 과정을 반영한다. 낮과 밤. 여름에서 겨울까지.

역사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1987)에서 설명하듯이 서양에서 순환적 개념은 고대 사상을 지배했다. 이는 성경에서도 암시된다. 예를 들어, 전도서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굴드는 성경이 선형적 시간 개념 또한 포함하고 있다고 쓴다. 시간이 반복 불가능한 사건들의 단방향 순서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성경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신은 한 번 지구를 창조하고, 노아에게 단 하나의 방주를 타고 유일무이한 홍수를 견뎌내라고 지시한다."

굴드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선형적 이해를 유대 사상의 "중요하고 독특한" 기여로 묘사한다. 성경 역사는 선형적 시간 개념에 힘을 실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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