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전쟁 조기 종전을 시사하면서 국제유가 급등세에 제동을 걸었지만 시장에선 고유가 국면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단순히 전쟁이 언제 끝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으로 훼손된 공급망 복구와 산유국의 전략 변화가 맞물리면서 국제유가의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미 연방정부에서 에너지 정보를 총괄하는 에너지정보청(EIA)이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월간보고서가 이 같은 전망에 불을 붙였다. 앞으로 적어도 두달 동안 유가가 배럴당 95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게 EIA 보고서의 골자다. EIA는 3분기 이후 연말까지 유가가 70달러대를 유지하면서 올해 평균 브렌트유 가격이 79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이 끝나도 전쟁 발발 이전 60달러 초중반이었던 유가를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당장 수일 안에 종전이 실현되더라도 에너지 공급망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부터 문제다. 최근 유가 상승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는 호르무즈 해협 운항 안전을 확보하는 것조차 단기간에 이뤄지기 쉽지 않다. 이란 군부가 해협 곳곳에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고 항로 안전을 군사적으로 검증하는 데만 최소 수주에서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종전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운항 안전이 계속 위협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발적으로라도 운항 위협이 이어지면 원유 공급망 정상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쟁 발발 이후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는 평소 하루 100척 이상에서 한 자릿수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생산시설 피해 복구는 더 큰 산이다. 중동 산유국의 주요 유전과 정유시설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가동률이 떨어졌거나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일부 시설은 실제 공격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시설 점검과 복구, 생산 재개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조만간 회원국의 전략비축유 공동 방출을 결정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전쟁 종료 이후 원유 공급망이 정상화되더라도 각국이 비축유를 다시 채우려는 대기 수요가 유가 하락폭을 제한할 가능성도 적잖다. EIA에 따르면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지난달 27일 기준 4억1540만배럴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2010년(7억2600만배럴)의 40% 이상 줄어든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조기 종전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조기 종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딴 생각을 품은 눈치다. 양국 사이에 전쟁 목표를 두고 미묘한 전략적 균열이 불거지면서 조기 종전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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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의 군사·핵 능력 약화와 이란 친미정권 수립 등 외교·안보 성과를 거두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번 기회에 숙적인 이란의 군사·경제 기반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신호와 관계 없이 공습의 고삐를 늦추지 않자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이란의 석유 시설을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스라엘 방송 채널13은 이스라엘 보안 당국이 이란 정권 몰락까지 최소 1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것보다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중동 산유국들의 유가 전략 변화도 변수로 꼽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이 시장 점유율을 위해 저유가를 감내하던 기류가 완전히 달라졌다. 저유가가 오히려 지역 내 안보 불안을 키우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중시켰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안보 강화와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고유가를 유지하려는 행보가 이어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