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과 유사한 2026년, 사모신용발 경고음] (中)

#2025년 9월. 미국 중고차 판매업체인 '트라이컬러'에 이어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퍼스트브랜즈'가 연달아 파산신청했다. 이들 회사는 은행보다 빠르게 자금이 집행되고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비은행 기관 사모대출을 받아 사업을 꾸려왔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번졌다. 최근 월가를 뒤덮은 '사모대출(사모신용·private credit)' 우려와 관련해 첫 경고음이 터진 사례다.
사모대출이란 대출 펀드에서 돈을 빌리는 일종의 사채다. 사실상 대출이지만 장부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그림자 금융'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9월 사건은 사모대출 시장이 그동안 부실 기업에 대해 자금 투자를 늘려왔다는 우려를 일으켰다.
◇사모대출 운용사 "원금 회수 못해"선언에 투자자들 "내돈 내놔"
파산한 업체에 돈을 빌려줬던 사모대출 운용사들은 대출 원금의 일부를 회수할 수 없게 됐음을 인정했다. 다수의 사모대출 운용사들은 손실을 입고 자산가치를 상각했고, 이때문에 순자산가치가 하락했다. '제퍼리스'를 비롯해 'JP모간' 등 굴지의 운용사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이와 관련해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주변에 더 많을 수 있다"는 비유다. 또다른 사모대출 부실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됐다.
여기에 사모대출 펀드가 집중 투자한 소프트웨어 시장이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무너질 것이란 공포가 가중됐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사스) 시장이 재앙(아포칼립스)을 맞는다는 이른바 '사스포칼립스' 시나리오다. 대형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경우 사모대출 '비크레드(BCRED)' 포트폴리오의 약 26%가 소프트웨어 회사에 집중돼 있다.
위험을 감지한 투자자들은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블루아울캐피탈'에 이어 인 블랙스톤에서 환매 요구가 빗발쳤다. 블랙스톤은 환매한도를 순자산의 5%에서 7%로 높이고, 그래도 모자란 부분(0.9%)은 블랙스톤 임직원 펀드가 지분을 인수하는 형태로 환매에 응했다. 앞서 기술기업 대출에 특화된 '블루아울 테크놀로지 인컴 펀드'에서도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빗발쳤는데, 블랙스톤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자산운용 플랫폼 엔다우어스의 휴 정 투자책임자는 "블랙스톤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는 사모 신용에 대한 우려가 특정 소수 업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산군 전체로 퍼졌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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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사모대출→금융사..."은행도 사모대출의 중심"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됨에 따라 사모대출에 투자하는 상장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주요 운용사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금융시장에선 사모대출펀드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간 높은 수익률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산가층으로 부터 자금을 유치했지만 신용대출 기업 파산 등 경고 신호들이 쌓이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믿음이 깨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UBS 그룹의 신용 전략가들은 AI가 혁신적인 기술을 내놓을 경우 소프트웨어 업종이 타격을 입으면서 사모신용 부도율이 무려 1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짚었다.
'사모대출 공포'는 금융기관 전반을 강타했다. 부실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사모대출 운용사 뿐만아니라, 이들 운용사에 자금을 댄 기관이나 금융사마저도 연쇄 충격이 예상돼서다. 실제 투자은행인 '제프리스'의 펀드를 통해 트라이컬러에 간접 투자하게 된 미국 지역은행인 '웨스턴얼라이언스'는 제프리스와 투자 손실을 둘러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금융기관들은 트라이컬러 등 부실 기업과 금전 거래가 엮인 기업들에 대한 위험액까지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WSJ은 이처럼 은행이 지난 1년 동안사모대출 업계를 지원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노출된 위험 금액은 거의 3000억달러(약 44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패트릭 코리건 노트르담 대학교 법학 교수는 "은행들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이 시스템(사모대출)의 중심에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금융시장의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등장했다. 고유가·고환율·신용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는 '트리플 악재' 국면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모습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17일(현지시간) 전날보다 3.20% 상승한 배럴당 103.42달러에 마감했다. 4일 연속 100달러를 상회한 것이다.
원/달러 환율도 지난 17일 장중 한때 1500원선을 뚫으며 국내 증시와 수입 물가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지난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고공행진하면서 고물가 우려도 확산한다. 시장에선 이번 사태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가 아닌 오히려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될 경우 최근 불거진 사모신용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에 대한 시장 기대는 인하에서 동결·인상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은 2조달러를 넘는 규모로 급성장했지만 최근 들어 부실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미국 사모대출 시장에서 환매 요청이 급증한 것이 대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랙스톤·블랙록 등 주요 운용사의 사모대출 펀드에서 1분기 환매 요청은 101억달러(약 14조9000억원)에 달한다. 운용사들은 환매 요청의 70%만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금리가 인상될 경우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사모대출 특성상 차입 기업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 경우 부실 위험이 빠르게 확대되며 신용시장 전반으로 불안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선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가 본격화될 경우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서 시중 자금 흐름이 둔화되는 '신용 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붕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사모신용 리스크가 은행 시스템이 아닌 비은행 영역에 분산돼 있다는 점에서 전이 속도와 강도가 과거와는 다를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 여건 등도 과거 대비 나아졌다는 평가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만큼 심각한 금융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위험구간을 지나고 있다"며 "미국 금리 경로가 인하에서 동결·인상 쪽으로 수정될 경우 환율 변동성과 주식시장 조정, 경기 둔화 압력이 함께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금융불안이 전개되는 것은 맞지만 아직 금융위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며 "사모대출 운영사와 금융회사로 부실이 번질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모니터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