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코리아' 꿈에 '격' 포기

'프리코리아' 꿈에 '격' 포기

이상배 기자
2006.11.03 12:23

[머투초대석] 이환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아쉬울 게 없었다.

장관까지 지냈고 대학원 원장에 법무법인과 다국적 기업의 고문 명함까지 가졌다. 족히 억대 연봉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모두 버렸다. 이환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64)의 얘기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장관 출신이 지방공무원 자리를 자청했다. "격이 안 맞다"며 고개를 갸우뚱한 이가 적지 않았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그의 행정고시 동기(6회)임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설교통부 장관 때 인천국제공항을 착공하면서 이미 인천을 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오래전부터 꿈꿔온 사업이다. 이를 위해 장관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국무총리보다 더 중요한 자리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외국인 투자유치가 국가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첩경이라는 판단에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성공한 다음에는 이를 전국으로 넓혀 '프리(Free) 코리아'로 만들어야 한다. 이어 한국뿐 아니라 북한으로도 외국 기업들을 끌고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통일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그는 "30년간 경제부처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인천경제자유구역 사업에 모두 쏟아붓겠다"고 했다. 공직자로서의 소명의식이 묻어난다.

이 청장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은 그의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1968년 공직에 입문한 뒤 경제기획원에서 12년 동안 외자유치업무를 맡았다. 81년 재무부로 옮긴 뒤에는 중동에 진출한 건설사의 미수금 해결을 위해 3년6개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됐다.

귀국해서는 국제금융국장도 역임했다. 97년 건교부 장관 시절에는 인천공항 배후에 '외국인 자유구역'을 만들겠다는 발표도 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외자유치를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위기탈출을 위한 국가경영 방법'을 2년간 연구했다. 귀국한 뒤 청장을 맡기 전까지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로고스법무법인 고문, 후지쯔 경제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온화하면서도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정통 엘리트 관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존심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인천시와 중앙정부 사이에 끼어 운신이 쉽지 않은 자리의 이 청장. 그가 '허브 인천, 프리 코리아'라는 오랜 꿈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프로필 △1942년생 △경남고 △서울대 법대 △행시6회 △경제기획원 경협총괄과장 △재무부 제1차관보 △관세청장 △재정경제원(현 재경부) 차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건설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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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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