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해커'로 변신한 트레이더

밤에는 '해커'로 변신한 트레이더

유일한 기자
2008.01.26 02:11

제롬 커비엘, 사상 최대 금융사고 어떻게 일으켰나

프랑스 2위 은행인 SG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제롬 커비엘은 해킹에 능한 트레이더였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충격을 주고 있다. 현대 금융시스템의 심장부라 불리는 전산시스템을 트레이더가 마음대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것. 생선을 지키라는 특명을 받은 고양이가 떠오른다. 사실이라면 손실 규모 뿐 아니라 사고 수법에 있어서도 세계 금융 사고사에 일대 전기를 세우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2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그와 가까이서 일하던 직원들은 "커비엘이 밤 늦게까지 일하는 때가 많았는데, 이때 회사의 컴퓨터 시스템에 은신할 만한 '땅굴'을 판 것(버로잉, burrowing) 같다"고 전했다. (버로잉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저그 종족 유닛들이 자기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땅속에 숨어버리는 일종의 치팅 기능을 가리키기도 한다.)

포지션을 숨기기 위해 밤새 컴퓨터를 해킹하고 겹겹으로 된 은신처를 마련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 파생 매매가 많은 SG의 시스템은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그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회사 임원들은 커비엘이 하루에 수 시간의 야간 해킹을 통해 다음 날 자신의 막대한 사기 포지션을 분명히 적발해낼 컴퓨터 통제 기능을 제거해버렸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이 결과 컴퓨터가 통제를 벗어난 막대한 방향성 매매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SG 공동 대표인 필립페 시턴은 "회사는 권한이 없었던 커비엘의 매매를 지난주까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매매가 체결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악용했다. 심지어 어느 날에 (트레이더의 종합적인 포지션) 점검이 이뤄지는지까지 알았다"며 "한 방향으로 포지션을 취하면 이를 위장하기 위해 허구의 반대 포지션을 취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매수포지션 하나를 감추기 위해 가짜 매도포지션을 취해 매수 포지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트레이딩 뿐 아니라 기술 파트에 있는 동료의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입력해 로그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커비엘의 끔찍한 사기는 어떻게 적발됐을까. 어느날 SG의 통제시스템이 갑자기 회사밖의 매매 파트너(고객)에게 경고를 보냈다. 여기서 꼬리가 잡혔다. 파트너의 계좌가 비정상적으로 좋은 신용도를 갖는다고 명시됐기 때문이다. 커비엘의 실수로 고객 계좌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컴퓨터가 적발해낸 것으로 추정됐다. SG측에서 그 이유를 묻자 이 파트너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이를 추적하다 커비엘이 추적된 것이다.

임원이 지난주 토요일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취조'는 하루종일 이어졌다. 처음 커비엘은 지수선물에 투자하는 기발한 매매기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한 동안 계속해서 이 매매전략의 유용함을 강변했다. 그러나 토요일 밤 그는 눈물을 터뜨리며 엄청난 사기 매매를 실토했다.

어떻게 SG가 경쟁사들에게 이를 들키지 않고 포지션을 청산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월요일 SG는 조금씩 포지션을 풀기 시작했다. 통상 이처럼 대규모 '사고' 포지션은 쉽게 적발되고 경쟁자들은 이를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전문가들은 SG의 포지션 청산이 월요일 아시아에서 유럽 증시로 이어진 투매와 연관이 깊다고 보고 있다. SG는 그러나 자신들의 청산으로 시장이 악화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또 SG가 입은 손실 49억 유로 가운데 20억 유로만 커비엘이 만들었고 나머지는 SG의 포지션 청산 과정에서 나타난 지수 급락 때문에 발생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 충격이 컸다는 해석이다.

수요일 SG는 JP모간체이스와 모간스탠리를 찾아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했다. 신용경색으로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에 600억달러를 퍼부은 소위 '국부펀드'들을 찾아가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흥정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협상이 하루이틀만에 성사됐다해도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역시 이를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르코지는 수요일 이 사건을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SG는 55억 유로의 자금을 신주 발행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주가가 폭락하면 SG는 매우 위험한 위기를 맞았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수요일 오후 미국 정부가 채권 보증 업체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금융주가 급등했고 이는 목요일 유럽 증시에 훈풍을 제공했다. SG는 이덕에 4% 하락하는데 그쳤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이다. SG는 2월21일 2007년 실적 발표후 신규 자금 조달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커비엘의 포지션이 어디에 얼마나 쌓였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이밖에도 71억달러 손실을 둘러싼 미스테리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젊은 트레이더의 해킹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 머지않아 하나둘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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