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삼식이가 제주신라호텔을 머문 적이 있었다. 제주신라는 국내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호텔 중 하나이다. 첫날 뷔페식당을 찾았다. 삼식이가 즐겨 먹는 것은 자장면과 탕수육, 그리고 김치찌개다. 불행히도 뷔페식당에는 그런 음식이 없었다. 삼식이는 두리번거리다가 접시에 잔뜩 밥과 김치를 담아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허겁지겁 먹었다. 뷔페에는 해산물 요리 등 다양한 음식이 많은데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의정부 삼식이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 의외로 삼식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삼식이는 판단력이 약하다. 아니 자각적인 판단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성공에 필수적인 3가지 요소 중 하나가 판단이다. 운과 판단력 그리고 결정력이 성공의 3요소이다. 생은 판단의 연속이다. 판단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판단 없는 삶이 있다면 그것 또한 판단이 개입된 것이다. 그러한 삶은 다만 주체적인 삶이 아니다. 노예의 삶이다. 굴욕적인 삶이다.
불행히도 그러나 자신의 판단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길목에 자리 잡은 것은 바로 판단이다. 주체적인 판단을 갖고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성공과 패배가 갈린다.
주변사람들에게 판단이 없다고 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낼만하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절대 착각이다. 왜 어째서. 착각이라고 하는가. 삼식이 얘기를 다시 해보자.
삼식이는 두리번거리다가 접시에 잔뜩 밥과 김치를 담아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허겁지겁 먹었다.
삼식이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식을 선택했다. 주변에 잔뜩 쌓인 진귀한 음식을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으니 고르지를 못했다. 기껏 밥하고 김치를 택하려면 호텔주변의 식당에서 5000원짜리 백반을 시키면 될 터였다. 굳이 그보다 10배 이상 비싼 호텔뷔페를 찾을 것은 아니었다.
삼식이가 즐겨 먹는 것은 자장면과 탕수육 그리고 김치찌개다. 불행히도 뷔페식당에는 그런 음식이 없었다. 삼식이에게는 아무리 좋은 음식을 선보여도 그는 자신만의 음식을 고집할 것이다.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그에게는 고역이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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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부잣집에 겁 없이 들어갔다. 돼지 주인이 안절부절못하다가 저녁 무렵 돌아온 돼지에게 물어보았다.
“부잣집에는 별게 많더냐. 진주 다이아몬드 등 눈이 부신 게 많더냐?”
돼지가 별소리 한다는 표정으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모두 헛소문입니다. 그런 것은 구경도 못 했다고요. 그냥 쓰레기 더미뿐이었던 걸요. 제가 콧등이 아플 정도로 그 집 뜰을 모두 파헤쳐 보았거든요.”
돼지가 돌아다닌 곳은 마구간이며 취사장 주변이었다.
우린 이런 일화를 보고 웃을 수밖에 없다. 삼식이와 돼지를 보고 ‘멍청한 놈’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높은 곳의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마찬가지로 우리를 보고 웃을지 모른다. 주체적인 판단이 없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말이다. 판단력이 미약한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각적인 판단이 없다. 아니 판단을 회피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공포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소위 판단공포증이다.
판단을 회피하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널리 알려진 사람에게 자신의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 특히 정치판이 난무할 때 다음날 술좌석에 가보면 전날 9시 뉴스의 앵커 말을 되풀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의기양양 떠든다. 녹음기 틀어놓은 것과 똑같다.
또 다른 하나는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일이 흐르는 대로 놔두는 것이다. 자신은 개입되지 않고 방관만 한다. 이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새벽녘 강변도로에 깔린 짙은 안개를 걷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개 속에서 걷히기를 기다렸다가는 사고 나기 십상이다. 안개 속을 달려오는 차량에 부딪혀 그대로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안개 속을 계속해서 헤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불안이라는 코드가 등장한다.
알지 못하면 사태파악이 어렵고, 볼 수 없으면 장래가 불안한 법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안개 속을 뚫고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믿어야 한다. 불안을 끌어안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관점을 철해야 한다. 주체적인 판단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첫 번째는 다양한 시각이다. 승자는 팔방미인을 추구하고, 패자는 전문가를 숭배한다. 이는 진실이다. 역사상 뛰어난 학자는 한 결 같이 다방면에서 전문가였다. 편협한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최근의 피터 드러커까지 이들은 모두 다방면의 대가들이다.
팔방미인이 왜 중요한가. 연상력 때문이다. 흔히 머리가 좋다는 것은 연상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연상은 결합시킨다는 뜻이다. 다방면으로 지식의 집적이 클수록 지식이 서로 어울려 놀라운 아이디어를 생산해낸다. 다양한 지식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창조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단지 한 두 가지 지식만으로는 갖가지 상황에 반응할 수는 없다.
경계를 초월해 사고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만능인이나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브릿지형 전문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헨리 포드가 이를 입증했다. 1801년 기계발명가 일라이 휘트니가 망가진 권총의 부품을 이용해 새 권총을 조립할 수 있다는 교환가능 부품이론에 주목했다. 그리고 시카고 정육점의 고기 생산 과정과 1882년 담배산업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연속흐름 생산이라는 아이디어를 결합시켰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아이디어를 섞어 포드는 자동차 일괄생산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탄생시킨 것이다.
전제를 아우를 줄 아는 종합적인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이 축적돼야 한다. 판단을 좌우할 직관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에서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인간의 판단력은 결국 직관력에서 판가름된다. 직관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이질적인 지식, 그리고 아이디어가 무의식중에 서로 부딪쳐 훌륭한 발상을 낳게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에 인문사회학적 지식, 예술가적 감각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역발상이다. 때로 세상을 거꾸로 볼 필요가 있다. 거꾸로 보는 것은 바로 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역발상은 창의적인 통찰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이는 근자의 일이 아니다. 수 천 년 동안 논쟁의 대상이 돼왔다. 26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것은 역으로 생각하기다. 모든 변화는 모순에서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 중 다수가 역발상에서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거꾸로 본 세상의 산물이다. 칸트의 철학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도 역발상에서 나왔다.
근세의 위대한 발견인 다윈의 진화론도 역발상의 산물이다. 22세의 창조주의자였던 찰스 다윈은 영국 해군 함정 비글호를 타고 5년간 세계를 일주를 하면서 결국 강력한 진화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 배에는 다른 선원들도 타고 있었지만 다윈은 그 여행을 통해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 번째는 권위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권위에 도전하고 부정해야 한다. 단 권위를 무시할 때는 그럴만한 자신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신을 판단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면 당당히 권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발전은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인슈타인, 칼 융, 니체, 프로이트, 백남준, 고흐, 비틀즈 등 각 분야의 개척자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시작했다.
흔히 천재들이 비난받는 유일한 이유는 관습과 전통에 따르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트렌드에 반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은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 역으로 생각하기, 권위를 무시하기 등 3가지 요소는 주체적이고 자각적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한 필수적이다. 판단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 인생은 자신이 사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고 결정내리는 것은 아니다.
반복해서 묻는다. 왜 주체적인 판단이 중요할까. 성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즈니스 성공은 미래 예측에 달려 있지 않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재빨리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판단력에 따라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판단의 중요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법이다.
주체적인 판단과 관련, 꼭 들려줄 실화가 있다. 대세와 엇박자를 낸 판단으로 승자가 된 이야기이다.
고객들은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대기 손님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즐거운 비명을 지를만하다. 그러나 정작 즐거워야할 장세은 하누소 회장의 얼굴을 밝지 않았다. 아니 묘한 표정이었다.
“팔면 팔수록 손해였지요. 갈비탕 한 그릇 당 1000원씩 손해를 보았습니다.”
한 그릇에 7000원하는 갈비탕의 원가가 5800원으로 뛰었단다. 바로 직전의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소고기수입이 금지 되다보니 갈비탕에 들어가는 고기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이다. 지난 2003년도의 일이다.
남들 같으면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가격을 올리던지, 품질을 떨어뜨리면 고만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어떠한 경우든 품질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손해 보는 것을 택해야 했습니다.”
손해 보는 음식장사는 근 1년간 지속됐다. 시간이 지나자 고기값이 안정되면서 갈비탕 원가비중도 떨어진 것이다.
수익이냐, 품질이냐의 갈림길에서 장 회장이 택한 것은 품질이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 음식을 만들 수도 있었다. 조금 떨어지는 고기와 부자재를 사용,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하누소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조금 맛이 떨어져도 매출에는 큰 지장이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전 식당들이 그럴지언정 하누소는 그럴 수가 없었다. 국내 최고의 갈비탕과 갈비를 자랑하는 하누소의 명성은 이와 같은 정직한 판단에서 비롯됐다. 세월 따라 어쭙잖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남들 같으면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가격을 올리던지, 품질을 떨어뜨리면 고만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사실 장 회장이 그러한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상당한 고뇌가 서려 있었다. 내로라하는 국내의 여타 레스토랑들이 잡고기를 섞는 등 수작을 부리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한 방향으로 갈 때 역으로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장 회장은 그것을 해냈다
“어떠한 경우든 품질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손해 보는 것을 택해야 했습니다.”
손해 보는 음식장사는 근 1년간 지속됐다. 시간이 지나자 고기값이 안정되면서 갈비탕 원가비중도 떨어진 것이다.
손해 보는 장사를 1년 동안 하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내심에는 자신의 판단을 믿은 장 회장의 원칙이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이 때문인지 최근의 경기침체에도 불구, 하누소 본사, 가맹점 매출은 떨어질 줄 모른다. 고객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상황과 맞물려 이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어려운 경기 속에서 품질을 택할 것인가, 가격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정 보 철>[email protected]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전 파이낸셜 중소기업부장
-'외식경영' 편집주간
-저서: '외식산업의 리더 9인의 성공법칙' '송추가마골 김오겸 회장의 성공신화' '이기는 사람은 생각부터 다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