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피해여성 보호보다 조직보위가 우선이라는 논리에 동조한 전교조에 대해서는 '브루투스 너마저' 식의 배신감까지 느끼는 이들이 상당수다.
사실 진보진영 내 남성 우월주의, 보수성 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운동권 마초들'에 대한 증언은 1990년대 중반부터 같은 진보진영 내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줄곧 제기돼 왔다. 2000년 12월 운동권 내 성폭력 가해자 16명의 실명을 공개한 이른바 '100인위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성폭력 사건의 본질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성폭력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보면 성폭력이 어디에서 발생했느냐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성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다.
그런 측면에서 민노총과 전교조가 이번에 보여준 자세는 실망스럽다 못해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회개혁과 진보를 외쳐온 이들이 어떻게 성폭력 문제에는 이렇게까지 몰상식하게 대처한 걸까. 부천성고문사건의 피해자인 명지대 권인숙 교수는 '대한민국은 군대다'란 저서에서 그 원인을 적대성 문화와 내부비판 부재에서 찾는다.
"1960년대 이후 전 사회적으로 진행된 군사화는 개인을 국가번영을 위한 부속 단위로 만들었고, 특히 일본과 북한에 대한 적대성을 절대화하는 문화 속에서 개인들을 적대적 투쟁에 익숙한 주체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1980년대 운동권은 집단주의적이며 군사주의적인 동원문화,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문화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생산해 내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면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진실은 비단 대의를 위해 개인은 희생돼도 좋다는 조직문화만은 아닐 것이다. 진보진영 내 팽배한 학벌주의와 계몽주의, 비정규직에 대한 이중잣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야 지탱할 수 있는 적대성 문화 등도 그 대상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