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CEO In & out]이상철 통합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
10년 전 ‘뛰는 공룡을 만들겠다’며 한국통신의 민영화를 이끌었던 이상철 '통합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젠 뛰는 공룡 KT와 정면에서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1월1일 출범한 통합LG텔레콤(15,600원 ▲330 +2.16%)의 선장이 된 이 부회장은 14년 전 KTF의 전신인 한국통신프리텔의 초대 사장을 맏았고, '프리텔 성공'을 바탕으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사장으로 임명됐던 통신업계의 맏형이다.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이기도 한 이 부회장이 이른바 'LG 3콤'(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을 묶은 통합LG텔레콤에 와서 내놓은 첫 마디는 ‘IT왕국 재건’이다. IT왕국은 LG텔레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통신 3사가 과당경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한 채 정체돼 있는 동안 애플 등이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다.
지난 6일 상암동 LG텔레콤 사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은 통신시장의 마케팅 및 보조금 과다경쟁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됐다며 성장 정체를 보이고 있는 통신업계의 공멸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보조금이 8조원에 이른다”면서 “이 돈이 새로운 연구개발이나 서비스에 쓰이지 않으면 끝장”이라고 강도 높게 성토했다.
이 부회장은 IT 부흥의 해법으로 ‘탈통신’을 들고 나왔다. 통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통신보다 더 큰 패러다임에서 전투를 주도하며 업계 3위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노림수라 할 수 있다.
탈통신은 '고객마다 원하는 것이 다른 만큼,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개념을 잡았다. 이 부회장은 이를 수용론(水用論)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막에서는 물 한잔이 귀하지만 물이 많은 곳에서는 물 한잔이 의미가 없다. 같은 물이라도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회사가 되겠다.”
이미 통합LG텔레콤은 20여개의 탈통신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 2월부터 본격적으로 선을 보여 최종적으로 연내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시간을 두고 보면 알 것”이라며 통합LG텔레콤의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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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위의 전쟁, 정면승부로 돌파
처음에는 외로워보이던 점들이 어느새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바둑에서 집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판세를 좌우할 듯한 돌들이 외면받기도 하고 치열한 전장에서 떨어져 있던 곳이 어느새 대마로 변신하기도 한다.
통신업계의 판도는 바둑과 흡사하다. 통신시장에서 막대한 힘을 발휘했던 유선통신망은 무선서비스에 자리를 내줬고, 지금은 무선인터넷과 유무선 통합서비스가 대세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이상철 부회장은 널리 알려진 바둑 고수다. 아마 6단으로 알려진 그의 실력은 한때 조훈현 9단과 넉점을 깔고 접바둑을 둬서 이긴 적이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형들 사이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고등학교 때 아마 1급 수준까지 올랐다. 대학 때는 서울대 공대 바둑 대표로 대회에 출천하기도 했다. 한국통신 사장 시절에는 마스터스배 탄생을 주도했을 정도로 열의도 높다.
이 부회장의 바둑 스타일은 화끈한 싸움바둑이다. 따라서 그의 경영 스타일은 종종 바둑 스타일과 비교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통신업계에서 궁극의 묘수를 찾아내는 모습이 싸움바둑을 즐기는 그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
이 부회장은 한국통신프리텔 초대 사장 시절 ‘공기업 자회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PCS 3사 가운데 꼴지는 떼어 논 당상’이라는 평가를 보기 좋게 뒤엎은 전력이 있다. 신생 프리텔을 PCS 선두 사업자로 끌어올린 데다 무선통신 선두인 SK텔레콤을 추격하는 전기를 마련해 싸움바둑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합LG텔레콤에서 이 부회장이 강조한 ‘탈통신’은 싸움바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 첫수로 이 부회장은 이종사업간 결합상품을 내세웠다.
통신서비스를 주축으로 카드나 의료, 관광, 교육 등 새 산업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큰 그림을 강조하는 이 부회장이 판단이다. 예컨대 현재도 카드사와 제휴가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장 개척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경쟁사보다 가벼운 몸집을 이용해 곳곳에서 속도감 있는 전투를 벌이겠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인화의 힘, 통신 판도 바꿀까
이 부회장은 통신업계에서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이석채 KT 회장과 자주 비교된다. 두사람 모두 정통부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96년, 이 부회장은 2002년 각각 정통부 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두사람의 스타일은 상반된다. 이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개혁가 이미지라면 이 부회장은 내부 단결을 중시하는 인화형이다. 때문에 이석채 회장은 지략에 뛰어난 조조에, 이 부회장은 설득형 리더인 유비에 비유되곤 한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프리텔 시절부터 토론을 즐겼다. 임원이건 사원이건 토론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외부인사를 만날 때도 대화에 인색한 법이 없다. 업무보고도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 토론으로 진행했다. 모든 것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통신 사장 시절 직원들과 벌였던 희망 대토론회다. 사장이 직접 나서 직원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전국 사업장에 생중계됐고, 날카로운 질문 속에 사장의 진솔한 답변이 이어지자 직원들의 불만이나 궁금증도 자연스레 해소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노사 임단협을 진행할 때의 일화도 이 부회장의 인화력을 잘 보여준다. 그는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꼬박 21시간 동안 협상테이블에 앉아 노조를 설득했다.
이 부회장은 통합LG텔레콤에서 또 한번 인화력을 발휘해야 할 상황이다.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등 한지붕 세가족을 화학적 융화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모든 직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열림과 소통의 문화를 열어가겠다”면서 인화를 강조했다. 아울러 통합LG텔레콤을 ‘자유인의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행복한 자유인의 둥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사람을 끄는 힘을 가진 이상철 부회장이 통합LG텔레콤을 끌고 나갈 첫 포석은 이제 막 놓여졌다.
◇이상철 부회장 약력
서울대 전기공학과
미국 듀크대 공학 박사
1991년 한국전기통신공사 통신망연구소 소장
1996년 한국통신프리텔 대표이사 사장
2001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
2002년 정보통신부 장관
2003년 고려대 석좌교수
2005년 광운대 총장
2010년 통합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