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둠'루비니 "그리스 디폴트 불가피, 구제기금 낭비 말라"

'닥터둠'루비니 "그리스 디폴트 불가피, 구제기금 낭비 말라"

권다희 기자
2010.06.29 10:21

그리스 부채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질서 있고 선제적인 채무 재조정이라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주장했다.

루비니 교수는 29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리스는 유동성 위기만이 아니라 국가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그리스가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그리스에 지원된 구제기금을 디폴트를 연기하는 데 낭비하는 대신 질서정연한 채무조정을 위해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루비니에 따르면 그리스가 디폴트에 처할 수밖에 없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가 구제 금융을 지급 받는 대가로 약속한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은 그리스의 경기후퇴를 지속시킬 것이다. 약속대로 긴축을 이행하더라도 2016년 공공부채 규모는 여전히 GDP의 148%로, 이러한 부채 수준에서는 작은 충격도 추가적인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2016년까지 GDP 대비 부채 비율을 안정화시키기로 한 G20 정상 합의처럼 선진국에서는 급격한 긴축이 필요하겠지만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안정화가 지속불가능하다.

실제로 신용평가사들은 그리스의 국채 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강등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주 그리스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왑(CDS)은 1000bp를 넘으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루비니 교수는 이처럼 디폴트가 불가피한 그리스에게 더 큰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은 디폴트가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1100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은 피할 수 없는 그리스의 디폴트를 연기하는 조치에 불과했다"며 "오히려 디폴트 상황이 닥칠 때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 비판했다.

루비니 교수는 "2002년 아르헨티나나 1998년 디폴트를 선언했던 러시아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IMF가 지원을 했어도 결국 디폴트를 막지 못했다"며 무질서한 디폴트의 예로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었다.

1998년~2001년 부채 위기를 겪었던 당시 아르헨티나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였던 반면 그리스는 13.6%에 달한다. 아르헨티나의 공공 채무와 경상수지는 각각 GDP의 50%, 2%였으나 그리스는 이 역시 115%, 10%에 달하는 등 당시 아르헨티나보다도 악화된 상황에 놓여있다.

일부에서는 그리스가 급격한 재정 감축에 성공했던 1990년대 벨기에, 아일랜드, 스웨덴처럼 재정 감축에 성공해 채무 재조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루비니에 따르면 이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당시 이들 국가의 부채는 만기가 더 길었고, 당시는 현재와 같이 경기 침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시기가 아니라 경제성장 국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루비니는 그리스의 채무 재조정이 그리스 국채 대부분을 보유한 유럽 금융기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채무 재조정이 이러한 피해를 오히려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루비니는 아르헨티나 스타일의 실패한 구제 금융보다 1999년 파키스탄, 우크라이나와 2002년 우르과이가 겪었던 계획적인 채무 재조정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들 국가는 만기를 연장하고 새로운 부채의 이자율도 시장 금리 이하에서 이들 국가들에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등 이전 채무를 새로운 거래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채무 위기에 대처했다. 중요한 점은 당시 부채의 총 액면가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채무국에 상환 기간을 연장해 주고 이자를 경감해 주는 것은 채권자들에게 손실을 지울 수밖에 없으나 이러한 손실은 전면적인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보다는 훨씬 적다.

디폴트 발생 시 권리 행사 우선순위가 공공부문에 밀리는 금융기관 등 대부분의 민간 채권자들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이미 그리스 국채 가격이 시장에서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시가평가 손실은 없을 것이란 게 루비니의 전망이다.

게다가 그리스의 부채 재조정은 더 간소해질 수도 있다. 이들 3개국 국채는 주로 런던과 뉴욕에서 발행됐기에 국채를 보유한 채권자들이 법정 소송 등의 위험을 안고 있었으나 그리스 국채는 95%가 그리스 내에서 발행됐다.

루비니는 "그리스 부채의 질서 있는 재조정이 그리스와 채권자들 모두에게 가장 적절하고 현실적인 방식"이라며 "유럽 위기가 심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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