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분양시장 울리는 '점프통장'

지방 분양시장 울리는 '점프통장'

전병윤 기자
2012.02.20 09:22

[머니위크]거품 빠지면 집값 '번지점프'…시장 침체 우려 단속은 '뒷짐'

지방 부동산시장을 '점프통장'이 휘젓고 다니고 있다. 수년째 수도권 주택경기에 불어닥친 냉기가 가시지 않고 있어 2~3년 전부터 투기세력의 손길이 그동안 소외받아 온 지방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품을 만들어 수익을 거둔 뒤 손을 뺐는데, 그 수단으로 점프통장을 주로 사용한다. 점프통장이란 청약 당첨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의 거주가가 소유한 청약통장을 대거 사 모아 해당지역으로 위장 전입해 청약하는 수법을 말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아파트 청약 자격이 해당 시나 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이 때문에 기획부동산처럼 '큰손'들은 가점 높은 청약통장을 수도권 등에서 뭉텅이로 매입해 청약 접수한 뒤 수십여개의 분양권을 따내고 프리미엄을 챙겨 팔아넘긴다.

이들은 당초 청약통장 소유자로부터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주고 사기 때문에 시장 과열을 조장해 높은 프리미엄을 붙여야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결국 현지 실수요자들만 비싼 가격에 분양을 받아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지난해 부산 명륜동 아이파크와 해운대 래미안 청약에서도 점프통장이 대거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금정구 C공인중개소 사장은 "기획부동산들이 가점 높은 A급 청약통장을 서울에서 2000만원씩 주고 무더기로 사오더니 분양권을 수두룩하게 따내고 웃돈 4000만원을 붙여 팔고 떠났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엔 프리미엄을 산 현지인들만 비싼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런 상황 속에도 정작 국토해양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부동산 청약시장 침체를 우려해 뒷짐을 지고 있거나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행 주택법에는 청약통장을 양수·양도하거나 이를 알선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전단지나 인터넷·문자메시지를 통한 광고행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처벌한다.

문제는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007년 국세청, 경찰청, 지차체 공무원들과 합동 단속반을 꾸려 점프통장 적발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단속반에 참여했던 국토부 관계자는 "사적으로 은밀히 계약하기 때문에 청약통장을 양수·양도했던 당사자 간 문제가 생겨 고소·고발이 일어나야 표면에 드러나는 구조"라며 "모델하우스 현장에서 불법거래를 단속했지만 거래현장을 덮쳐 적발해 내는 경우는 거의 없어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자체, 분양시장 찬물 끼얹을까 대응 미온적

이 때문에 일정 거주기간을 채우는 청약자에 자격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예컨대 부산에 1년 이상 거주한 경우만 지역 아파트 청약자격을 주는 방안이다. 이 같은 청약자의 거주기간 요건은 지자체에서 정하면 된다. 수도권의 경우 1년 이상 살아야만 서울이나 경기·인천에서 공급되는 아파트를 청약할 수 있다.

그러나 거주기간 제한은 논의 과정에서 묵살됐다. 대구·광주를 비롯한 광역시와 대부분 지자체는 "분양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로 거주요건을 적용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실제 부산은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온 당일까지만 거주지를 옮기면 청약할 수 있다.

부산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점프통장의 폐해가 많아 지난해 초에 학계를 중심으로 거주기간이 최소 6개월을 넘은 이에게 자격을 줘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분양시장이 장기간 침체를 겪은 후 이제 불이 붙고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어 경기를 침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아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앞으로 분양시장이 과열조짐을 보이면 적극 대응에 나설 방침이지만, 시장은 후유증으로 침체를 보인 뒤여서 늑장대응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부 역시 지자체들의 거주기간 조건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부산 해운대의 B공인중개업소 사장은 "지방은 가점 높은 청약통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아 기획부동산의 점프통장과 청약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물량 공세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분양권을 팔아넘기는 바람에 현지인들만 피해를 입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시는 불법 청약통장·분양권 매매와 전쟁 중

연말부터 공공기관 이전을 시작하는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에도 분양권과 청약통장 불법 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새로 조성되는 세종시의 경우는 청약자의 지역 제한을 두지 않는다. 대규모 미분양 우려를 줄이고 세종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종시 아파트 분양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분양권과 청약통장 불법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지방 검찰청·경찰청·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15개 기관으로 '세종시 부동산투기대책본부' 합동 단속반을 꾸려 투기세력 차단을 위한 파상공세를 펴고 있지만 단속의 실효성은 미지수다.

합동단속반은 행복청을 중심으로 대전·청주지방검찰청, 충남·충북지방경찰청, 대전지방국세청, 대전광역시청, 충남·충북도청 등 총 15개 기관이 참여했다.

단속반은 현재 분양권과 청약통장을 불법매매한 10명을 적발, 조사하고 있다. 이중 2명은 1년간 전매가 금지된 세종시 첫마을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700만원에서 3000만원의 웃돈을 받고 무허가 공인중개업자에게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해 본격적인 분양이 시작되면서 청약경쟁률이 치솟는 등 과열양상을 보였다. 실제 지난해 선보인 전국 신규아파트 가운데 경쟁률이 높았던 상위 5위 안에 세종 더샵레이크파크(71대1)와 세종 더샵센트럴시티(57대1) 2곳이 포함됐을 만큼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특히 민간건설사들이 올 상반기에 세종시에서 1만4000가구의 분양을 계획 중인 만큼 투기세력이 더욱 활개를 칠 우려가 높다. 또한 세종시 분양물량 중 공공기관 이전 대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이 전체의 70%를 차지해 일반물량이 귀하다는 점도 투기세력에겐 매력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행복청 관계자는 "합동단속반의 관계기관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별로 공조체계를 구축했다"며 "다음달에 다시 회의를 소집해 추가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획부동산들이 우선 당첨 대상 지역인 연기군과 공주시 거주자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만큼 행정기관들이 해당 주민을 대상으로 사전 고지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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