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 가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까막눈'이 된다. 반대로 의사는 '절대자'로 군림한다. 이는 '의료'와 '약'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의사가 내주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아가 돈을 내고 약을 타는 것이다.
의사는 우선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쓸 것인지 결정한다. 그리고 동일한 성분의 약 중 어떤 회사가 만든 약을 쓸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의사의 몫이다. 이것이 의사들에게 부여된 '처방권'이다.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정부가 '처방권'을 부정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바꿔먹어도 되는 약' 등 의약품 정보를 쉽게 조회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은데 따른 것이다.
이 앱에 처방된 약의 이름을 넣으면 그 약의 가격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제품의 가격을 표시해준다. 환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성분의 약일 경우 더 싼 약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생긴 셈이다.
대체조제는 전혀 다른 성분의 약을 쓸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동일한 성분을 대체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질환별 중증도와 환자의 병력, 체질, 특이사항, 병용·연령금기 등을 판단해 의약품을 처방하는 만큼 대체조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만 혈안이 된 복지부의 무모한 정책실험으로 국민건강권이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2가지 전제 조건를 충족해야 한다. 우선 의사들은 220여개 제약사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네릭(복제약)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한다. 또 성분은 같지만 제조사만 다른 약들을 환자들에게 투여했을 때 효능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조건을 충족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중증질환에 쓰이는 약의 경우 의사의 정확한 처방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경증질환에 쓰이는 제네릭의 경우 이름도 모를 제약사의 약을 꼭 의사가 처방해야만 환자의 건강권이 지켜진다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의사의 정확한 처방이 필요하다면 그 약은 대체조제가 어렵게 하는 규정을 만들면 될 일이다.
과거에는 환자들이 동일한 성분의 약 중 가격이 다른 약을 선택할 수 정보를 충분히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시민들도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적어도 경증질환에 사용되는 제네릭의 선택권은 환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