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흔들리는 중산층/ '소호푸어'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1. 경기도 분당에 거주하는 주부 허모씨(48)는 지난해 작은 꽃집을 개업했다. 중소업체 임원으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함도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아이들의 교육비 등 지출이 자꾸 늘어나자 남편과 상의해 본격적인 돈벌이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임대료가 비싼 분당지역이라 창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2억원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었다. 남편과 상의를 거쳐 그동안 모아놓은 전재산을 투자하고 8000만원가량의 대출도 받았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난 지금 허씨는 "동네 장사니까 내가 잘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기가 더 빠듯해졌다"며 "남편 월급마저 이자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니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곳곳에서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들의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들을 고통으로 내모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자영업의 실패다. 이른바 '소호(SOHO)푸어'로 전락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소호푸어' 굴레
지난 8월16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자영업자는 549만2000여명. 1년새 19만6000명이 늘었고 10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과 비교했을 때 증가한 취업자 40만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20만명 정도가 자영업자가 됐다는 얘기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경기불황으로 인해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자영업으로 유입되는 비중이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들의 3년간 평균생존률은 약 60%. 10곳 중 4곳은 3년 내 폐업한다는 얘기다. 업종별 평균 생존기간 역시 대부분 4~5년에 불과하다. 3년을 버티고 살아남는다 해도 5년 이상을 버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 8월 <영세사업자 실태 보고서>를 펴낸 KDI 이재형 박사는 "'묻지마 창업'이 문제라고 하는데 조사 중 만난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전재산을 그렇게 함부로 투자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말한다. 창업자 대부분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창업설명회 등을 수십군데씩 쫓아다니며 어렵게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소호푸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통계상 수치로는 자영업자의 매출 하락이 그리 크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사업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음식업의 경우 산업구조조정과 함께 최근의 경기불황이 겹치면서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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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한달에 1억원가량 수익을 내던 곳이 8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고 계층 하락을 겪는 건 아니지만 영세사업자의 경우 한달에 1000만원 수익을 내던 곳이 10년 뒤인 현재 1200만원 수익을 내고 있다면 현실 물가와 비교해 빠듯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결과 현재 국내 자영업자들의 월 평균 수익은 150만원 정도. 여기에 가게 운영을 위한 원자재와 인건비 등을 제하고 생활물가를 감안한다면 한달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더욱이 은퇴자를 비롯한 신규 창업자의 경우 창업자금대출까지 받았다면 가게를 운영할수록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희망이 사라진 자영업자들 "나는 빈곤층" 60%
"본인이 인식하는 소득계층은?"이란 질문에 무려 65.5%가 '빈곤층'으로 답했다. '중산층'이라는 답변은 20%. '부유층'이라고 인식하는 이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업종별 경영상황을 조사한 결과 가운데 PC방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들의 답변이다. 이는 PC방 사업자뿐 아니라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소호푸어'가 단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새로 창업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위험요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소상공인은 "희망이 없다"는 말로 중산층의 위기를 표현했다. 20년째 PC방을 운영 중이라는 그는 "10여년 전에는 수익이 많지 않아도 가족들과 여행 한번 다녀오는 등 누리며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며 "그러나 요즘에는 수익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아이들 학원까지 끊을 정도로 빠듯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적자경영이 심각해지면서 그가 떠안은 빚만 1억원이나 된다. PC방 사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인테리어나 컴퓨터에 투자가 필요한 데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경영이 더 악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괴로운 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졌다는 점"이라고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의 업종별 조사 결과 PC방 사업자 중 97.3%가 올해 경영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중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한 비율도 50%를 넘어선다.
PC방 사업자 뿐만 아니다. 전체 자영업자의 57% 이상이 향후 전망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자영업자에게서 중산층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건 창업 실패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지원책이 전혀 없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최승재 중소기업중앙회 이사는 "PC방뿐 아니라 유통·외식업종도 대기업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부가 지원정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대출을 더 쉽게' 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그 결과 자영업자들이 죄다 빚 폭탄만 떠안고 하루하루 버티는 신세가 됐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형 박사는 "경기가 좋을 때 폐업률이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문제는 어떻게 문을 닫느냐다"고 말했다. 경기가 좋아 경영이 잘 돼 다른 점주에게 권리금 등 대가를 받고 넘기느냐 아니면 경영악화로 자영업자가 빚을 떠안고 문을 닫느냐의 차이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후자의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업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사회정책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