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에티오피아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한도데'를 가다

먼 이국땅 한국에서 온 남녀대학생 9명이 삽을 들고 배수로에 들어갔다. 그간 흙이 많이 쌓여 비가 올 때마다 물은 길로 넘쳤다. 대학생들이 배수로 흙을 퍼올리기 시작한 지 20여분 정도 지났을까, 현지 청년들이 저마다 삽과 곡괭이 등을 들고 몰려들었다. 청년의 숫자는 불어나 20여명이 됐다. 어느새 학생들이 하던 일은 마을 청년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200m 정도 되는 배수로가 4시간여 만에 말끔해졌다.
지난달 하순 새마을세계화재단이 새마을사업을 전파하는 에티오피아 '한도데'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인사업가들에게 에티오피아인의 민족성에 대해 귀가 아프게 들은 게 "자기 소유가 아닌 공유지는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였다.
실제로 대도시의 길거리가 지저분해도 청소할 생각을 하지 않고, 풀이 무성해도 깎지 않는 게 그 때문인 것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그런 생각이 편견임을 깨달았다. 청년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온 마을이 함께 쓰는 배수로를 힘을 합쳐 정비한 것이다.
◇ 아프리카 마을에 '할 수 있다' 정신 일깨워= 새마을중앙회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하고 이곳에서 1년여 새마을사업을 전파하는 김윤성 팀장(61)은 "새마을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마을 안길을 정비하고 진입로를 넓히는 '가시적인 성과'가 주효했다"며 "마을주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들도 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한도데마을은 에티오피아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새마을재단에서 한 달여 전에 315㎸A(킬로볼트암페어) 규모의 변압기를 설치하기 전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집은 대부분 '고조'라는 전통가옥이다. 이 집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주식인 '인젤라'를 만드는 곡물인 '테프' 볏짚으로 지붕을 엮고 침실과 외양간, 부엌이 한 공간에 있는 형태다.
마을사람들은 주로 텃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소와 양을 길러 생활하는데 남자는 집에 있고, 밭일은 주로 집안의 여자가 한다. 여자는 15세 정도 되면 결혼을 해 아이를 낳기 시작한다. 근처에 학교가 없어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게 불가능했다. 10대 청소년과 20, 30대 청년, 40대 장년들은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은 3년 전 새마을 시범마을로 지정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청년들은 저녁마다 새마을회관 공터에 모여 태권도 연습에 여념이 없다.
이들도 저마다 한국에 가서 검정띠를 따오는 희망을 마음에 품고 있다.
독자들의 PICK!
지난 6월에는 새마을회관 옆에 새 유치원 건물이 생겼다. 이 마을 전체 인구 1956명 가운데 10세 미만 아이는 490명 정도로 4분의1에 달한다. 이곳에는 원래 1999년 독일이 지어준 작은 유치원 건물이 있었다. 2010년 새마을봉사단이 처음 들어올 때는 100명 미만 아이가 취학 전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봉사단이 활동하면서 숫자가 260명으로 늘어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취학 전 교육을 해야 했다. 그러다 경북 구미시 새마을회의 지원을 받아 아예 새 건물을 짓게 됐다. 에티오피아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별도 교과서 없이 교사·교수의 재량으로 가르치는 게 보통인데, 이곳에서는 교과서를 만들었다. 지금은 지자체 교육청에서까지 이곳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유치원에서 중·고생과 부녀자들을 상대로 영어교육이 진행된다.
◇새마을 전파 3년, 주민들 '삶의 중심'으로= 옛 유치원 건물은 마을 부녀자들을 상대로 한 기술교육장으로 바뀌었다. 재봉틀 20대를 들여놔 40여명의 여성이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보실력이지만 석달 정도 이곳에서 연습을 하고 나면 장에 내다팔 정도의 자수실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놀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인근 기술학교에 위탁해 컴퓨터 사용과 목공가구 제작, 용접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테프와 밀밖에 재배할 줄 모르던 주민들은 고구마, 마늘, 당근, 감자 등 특용작물과 사료작물 재배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새마을회관은 마을의 문화센터가 됐다. 마을에는 자체적으로 새마을지도자회, 새마을청년회, 새마을부녀회가 구성된 상태. 가로등이 세워지면서 모임별로 저녁마다 이곳에서 만나 어떤 일을 할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도데 새마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제말씨(38)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새마을회관이 삶의 중심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봉사단을 이끌고 한도데마을을 방문한 김창현 새마을세계화재단 주임은 새마을운동이 아프리카를 발전시키는 '한류'라고 했다. 그는 "에티오피아는 세계 각국의 원조가 집중되는 곳인데,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돈을 지원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우리의 근대화 성공방식을 이곳에 심어줌으로써 단순한 물질적 지원보다 더 큰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 세계적 빈곤퇴치 프로그램으로=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생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실제로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잊혀졌다.
하지만 저개발국가에서 국민들의 정신과 생활을 개선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일회성 구호 위주의 지원활동이 아니라 '자립'을 목표로 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새마을 운동의 의미는 독보적이다.

해당 국가 정부도 새마을운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에티오피아 총리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역사를 담은 DVD를 각료 회의에서 상영하고, 지방 당원들의 정신교육 메인 교재로 활용한다.
또 집권당인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의 젊은 엘리트들을 영남대에 마련된 새마을 석사 과정에 매년 5명씩 보내 새마을 운동을 배우고 오게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현재 새마을연수원을 건립,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온 이들이 지방을 상대로 교육을 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에티오피아 근대화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 멜레스 제나위 전 총리는 2010년 방한해서는 "새마을운동은 희망이 없는 아프리카에 희망을 준다"고, 지난해 3월에는 새마을운동 세계화 현장점검을 위해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김관용 경북지사에게 "오늘날 한국의 발전이 있기까지 그 중심에 새마을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