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초코파이 '정(情').."돈 앞에선 한(恨)"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돈 앞에선 한(恨)"

반준환, 장시복 기자
2013.09.25 10:30

"오리온은 초코파이에만 정(情)이라는 글자를 써 붙였지, 실제로는 혈육 간에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이더군요. 돈 문제가 얽히니 가족 우애가 돈독하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싶을 정도로 냉정해졌습니다."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양그룹의 손길을 뿌리친 오리온그룹을 놓고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지난 23일 이렇게 밝혔다. 초코파이는 특유의 '정' 마케팅을 강조하며 연간 20억개 이상 팔아왔지만 정작 오리온 스스로는 그 정을 져버리는 이중성을 지적한 것이다.

금융권은 당초에는 오리온그룹이 동양그룹에 자금 지원을 해줄 것으로 봤다. 그만큼 두 그룹 관계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 두 그룹은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계열 분리를 했다. 당시 재계 자산순위 17위였던 동양그룹은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의 맏사위인 현재현 회장이 맡았다. 현 회장은 동양메이저를 주축으로 '제조 및 금융' 전문그룹으로 동양을 키웠다.

둘째 사위 담철곤 회장에게 넘어온 오리온그룹은 제과를 중심으로 한 '식품 및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났다. 2000년 기준 동양그룹 매출액은 4조4800억원이었고, 오리온그룹은 7270억원에 그쳤다.

계열 분리 후에도 두 그룹 혈연의 정은 한동안 깊게 지속됐다. 동양그룹은 초창기 오리온의 연착륙을 돕기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동양그룹의 다양한 지원이 오늘의 오리온을 있게 했다는 평이다.

당시 오리온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공격 투자를 단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자금이 절실했다. 동양그룹은 '실탄'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계열사인 동양종금증권을 통해 오리온을 물밑에서 지원했다. 동양종금증권은 특히 2000년 하반기부터 오리온의 무보증사채 투자자 모집을 위한 주간사를 자처했다.

지난해 초까지 이뤄진 주간사 계약 18건 중 동양종금증권이 7건을 도맡아왔다. 주간사로 나서진 않은 경우에도 자금 인수에 참여하거나 업무를 지원한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동양종금증권은 오리온 무보증사채 투자자 모집건수의 70% 정도를 주간사로 뛰었다"며 "물론 전폭적인 지원으로 보긴 어렵지만 분명한 공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동양그룹이 계열분리 과정에서 오리온그룹에 성장사업을 많이 넘겨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오리온이 계열 분리 당시 알짜사업으로 주목받던 방송과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캐시 카우(이익중심)로 꼽힌 식품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동양그룹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혈연의 정을 무시한 오리온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담 회장의 최근 이력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담 회장은 회삿돈을 빼돌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같은 최고급 외제차를 빌려 사용하고 미술품을 구입하는 등 횡령 배임 혐의로 지난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담 회장은 개인용 체력단련실은 물론 사적으로 청소와 요리 등을 위해 자택에 고용한 사람들의 월급까지 계열사 자금으로 지급해 물의를 빚었다.

회삿돈은 마치 개인 돈처럼 썼지만 정작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벼랑 끝에 놓인 형제 기업에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이 그만의 '정'이었고, 도움이 절실한 동양에는 한(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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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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