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 임명합니다"…한겨울 냥이 내쫓던 그 아파트, 이유 있는 변신

"캣맘 임명합니다"…한겨울 냥이 내쫓던 그 아파트, 이유 있는 변신

남형도 기자
2026.07.04 06:38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관리실·주민 협력해 동네 고양이와 공존…중성화로 소음 줄고 관리 잘 돼

고양이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으러 다가온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의 동네 고양이. 밥 시간이면 어김없이 모인다고 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사진= 남형도 기자
고양이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으러 다가온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의 동네 고양이. 밥 시간이면 어김없이 모인다고 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사진= 남형도 기자

야트막한 언덕에 동네 고양이가 모여들었다. 털 색깔이 갈색인 치즈, 회색이, 삼색이까지. 다가오는 걸음이 부드럽고 평온했다. 치이고 쫓기고 굶주리는 삶에서도 여긴 괜찮다는 듯.

1일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일명 '고양이 언덕'이라 불리는 곳 앞에 섰다. 아파트 옆 귀퉁이에 마련된 작다란 공간이었다. 동네 고양이 4마리가 먹고 마시고 쉬는 곳. 다른 이들은 들어올 수 없게 울타리도 쳐 두었다. 관리실과 입주자대표회의 협조 덕분이었다.

고양이 엄마 박지은씨(가명)가 동네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다. 비가 곧 떨어질 것처럼 흐린 날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고양이 엄마 박지은씨(가명)가 동네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다. 비가 곧 떨어질 것처럼 흐린 날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딸깍하고 문이 열렸다. 고양이 엄마 이은우씨(가명)가 가방을 들고 왔다. 오후 4시30분, 고양이들이 배를 채울 시간이었다. 은동이는 다리에 몸을 부비고 쁘니는 천천히 흙 위를 사뿐히 걸어 다녔다.

콘크리트가 뒤덮힌 길 위에서 고단히 먹이 활동 하는 고양이들이 앉았다. 그릇 속 밥을 분주히 먹었다. 생김새만 다른 줄 알았더니 식성도 다 다르단다. 좋아하는 사료가 다 있다고. 고유한 존재들. 밥을 다 먹더니 은동이가 나른한 졸음에 겨워 앉았다.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급식소에 놀러온 동네 한 초등학생. 은동이와 놀아주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급식소에 놀러온 동네 한 초등학생. 은동이와 놀아주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은동이 있어요?"

안경 쓴 여자아이가 은동이를 찾았다. 학교 끝나고 온 거였다. 쪼그리고 앉더니 깃털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을 놀아주었다.

한 동네서 평생 사는 고양이를 동네 사람들이 잘 안다, 이름을 부른다, 챙겨주고 함께 살아간다. 불편한 갈등이 불거진 아파트도 많은데, 이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

한겨울에 고양이 내쫓던 아파트였다
안전하고 평온한 고양이 돌봄 공간이 생기기까지, 참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안전하고 평온한 고양이 돌봄 공간이 생기기까지, 참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장마라 비가 퍼부을 것 같다며 이씨가 고양이집을 천으로 덮었다. 그의 이야길 들어보기로 했다. 6년 전인 2020년으로 돌아갔다.

"그해 여름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열려는 길고양이들을 봤어요. 배가 너무 고프구나, 처음 알게 됐지요. 그날 밤 참치에 밥을 비벼서 줘봤어요. 아침이면 싹 다 없어지더라고요."

그리 밥을 주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더 늘지 않게 중성화했다. 급식소도 깨끗하게 관리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한겨울에 고양이들이 집에서 잘 때였다. 그 집을 막대기로 두들겨서 다 쫓아낸 이가 있었다. 이씨는 추운데 떨어가며 그러지 못하게 지켰다. 밥그릇을 뒤집고 거기에 물을 붓는 것도 잦았다.

2년간 관리소장 설득…만나는 이마다 '고양이 공부'하게 알려
벽돌 위에 놓인 밥을 분주히 먹는 동네 고양이들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벽돌 위에 놓인 밥을 분주히 먹는 동네 고양이들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싸우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 했다. 인식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대신 설득했다.

"고양이 중성화를 안 하면 울음이 더 시끄럽고, 새끼 낳으면 동네가 더 정신 없어진다고 알렸지요. 먹을 걸 찾아 구석구석 다니며 사람들 놀라게 한다고요. 중성화와 급식소가 필요한 이유인 거지요. 대신 그런 뒤엔 야생성이 사라지니 죽을 때까지 챙겨야 한다고요."

숨어서 주지 않았다. 중성화를 마치면 아파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알렸다.

핵심은 '아파트 관리실'이었다. 첨엔 이해도가 낮아 설득이 쉽지 않았다. 필요성을 인정받기까지 장장 2년이 걸렸단다. 그래도 틈틈이 음료수를 전하고 떡을 돌려가며 대화했다. 관리실에 있던 젊은 과장이 큰 도움이 됐다.

관리실에서 협조해주니 한결 수월해졌다. 무조건 밥 주지 말라고 쫓아다니던 경비원들이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 관리실과 급식소 위치를 공유해, 주민 민원이 들어올 시 알 수 있도록 했다. 갈등이 불거지면 관리실에서 중재해줬다.

치즈색 동네 고양이가 밥 달라고 찾아왔다./사진=남형도 기자
치즈색 동네 고양이가 밥 달라고 찾아왔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는 사이 주민들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이씨는 "특히 아이들이 고양이들을 좋아한다. 지나가면 '고양이 엄마다, 안녕하세요' 인사한다"며 "특히 요즘엔 젊은 주민들이 많아 고양이에게 호의적이고 인식이 좋다"고 했다. 관리실도 고양이 엄마들에게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한단다.

이 아파트 주민 이지민씨(37)는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선 고양이들 밥 못 주게 무조건 막고, 싸우는 것만 봐서 맘이 안 좋았다. 편의로 처리하느라 공존을 막는 게 아닌가. 여긴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져서 좋다"고 했다. 이어 "그러니 더 잘 관리되는 것 같다. 길고양이 수명도 2~3년으로 길지 않은데 편히 살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관리실이 '캣맘·캣대디' 모집하는 곳 늘어, 호평
경기도 성남 한 아파트에선 지난 1월, 캣맘과 캣대디 활동가를 모집한단 공고를 올렸다./사진=남형도 기자
경기도 성남 한 아파트에선 지난 1월, 캣맘과 캣대디 활동가를 모집한단 공고를 올렸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방식도 이처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몇몇 주민이 싫어하고 주도해 민원을 넣고, 캣맘·캣대디도 몰래 숨어서 주고 갈등이 커지던 방식. 이를 해결하려 돌봄을 양지로 끄집어낸다. 잘 관리되도록 캣맘·캣대디와 관리실이 협력하는 거다.

경기도 성남 한 아파트는 지난 1월 '캣맘․캣대디 활동가 모집' 공고를 냈다. 급식소를 관리하고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꿔 공존하자는 취지였다. 고양이 관련 민원이 있을 때 함께 대응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해당 아파트 관리실 관계자는 "캣맘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있단 걸 알아서, 양지로 나와 함께 잘 돌봤으면 하는 취지로 공고를 냈다"고 했다. 다만 지원한 이가 1명밖에 안 돼 모집은 성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캣맘과 캣대디를 모집한단 공고에 남겨진 반응들. 동네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게 감지된다./사진=스레드 SNS
캣맘과 캣대디를 모집한단 공고에 남겨진 반응들. 동네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게 감지된다./사진=스레드 SNS

해당 게시글이 SNS에서 알려지자 호평이 쏟아졌다. "따뜻한 이웃이 사는 명품 아파트"라며 "우리 아파트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추천을 많이 받았다. "이런 움직임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간 되는 주민들이 아파트를 위해 봉사하는 문화도 생기고 길 동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란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함께'여서 해낼 수 있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밥 주는 이를 기다리던 동네 고양이. 이름은 코코./사진=남형도 기자
지하주차장에서 밥 주는 이를 기다리던 동네 고양이. 이름은 코코./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 돌봄에 있어 또 중요한 것은 공존이다. 첫 사례 양천구 아파트 고양이 엄마 이씨의 얘기다.

은동이가 동네 애들한테 비비탄을 맞아서 턱 절반이 부숴진 적이 있었다. 입원해야 해서 병원비만 170만원이 나왔다. 돈도 돈인데 매일 밥과 물을 주느라 어디 여행도 편히 못 간다고. 고양이가 며칠 안 보이면 무슨 일 생겼을까 찾아다니는 삶.

이씨는 함께여서 가능하다 했다. 이 동네 고양이들도 엄마 셋이서 함께 회비를 걷고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그게 큰 힘이다.

"서로 힘들 때 있잖아요. 길에 살기에 고양이들이 다치거나 아플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같이 할 수 있어서 위로됩니다. 혼자서는 못 했을 거 같아요."

동네 고양이의 평온한 밥자리.
동네 고양이의 평온한 밥자리.

잠시 뒤 큰 소나기가 쏟아졌다. 또 다른 고양이 엄마 김윤진씨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비를 피해 들어 온 동네 고양이 코코가 '야옹, 야오옹' 하며 울었다. 김씨가 다가가자 호의의 몸짓을 보였다. 계단 옆 작은 공간에 밥과 물이 동그랗게 채워졌다. 주렸던 작은 존재가 그제야 배를 채웠다.

"이렇게 기다리는데 어떻게 안 주겠어요. 같이 잘 살아야지요."

우산도 못 가리는 비로 한쪽 어깨가 다 젖은 채 사라진 김씨. 그 덕분에 작은 동네 고양이는 또 하루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남형도 기자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