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균열과 '서사 공동체'[투데이 窓/임대근]

스타벅스의 균열과 '서사 공동체'[투데이 窓/임대근]

임대근 한국외대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 / 한국영화학회장
2026.07.0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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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멘스 나찌 연상 상품으로 곤욕
소비자는 상품 아닌 경험과 정체성 구매
브랜드도 공동체의 합의된 서사에 기반

스페인 패션 브랜드 자라는 2014년 노란 별이 달린 줄무늬 아동 파자마를 출시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 수감복과 유대인 표식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상품은 모두 회수되었다. 자라는 2007년에도 나치 상징 핸드백으로 논란을 겪었다. '반복되는 무감각'이었다.

독일 가전 브랜드 지멘스는 2002년 미국에서 '치클론'(Zyklon)이라는 상표를 출원했다가 거둬들였다. 아우슈비츠의 독가스 '치클론B'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지멘스 자신이 나치 시기 강제노동에 연루된 기업이었기에 파장은 더 컸다.

이야기는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는 이야기를 만든다. 신화, 역사, 소설, 영화, 광고로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는 '서사 공동체' 안에서 살아 숨 쉰다. 공동체가 믿는 이야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 일원이 되기 어렵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없고,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단군신화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우리 시대의 어떤 역사적 사건은 이미 전지구적 서사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역사는, 유대인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없다는 전지구적 합의에 이르렀다.

거듭된 사과와 역사 교육이라는 출구 전략으로 잠잠해지나 싶었던 스타벅스 이슈가 다시 소환됐다. 배재고 선수들의 응원 구호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이제 "스타벅스 간다"라는 말은 특정한 의미를 갖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상품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로 소비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마신다는 거다. 미국 브랜드학자 더글러스 홀트는 나이키나 코카콜라 같은 '아이코닉 브랜드'는 한 사회의 문화적 긴장과 욕망을 다루는 '신화'를 팔아 정상에 오른다고 분석했다. 위대한 브랜드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콘텐츠다.

스타벅스는 오래전부터 '문화를 판다'는 전략으로 마케팅을 펼쳐 왔다. 초록 로고가 새겨진 컵을 들고 있는 행위 자체가 독특한 자기표현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경험과 정체성을 구매했다.

문화콘텐츠가 된 브랜드는 힘이 세다. 그러나 또한 그 지점이 가장 취약하다. 홀트의 표현을 빌리면, 신화를 팔던 브랜드는 신화의 문법을 어기는 순간 심판받는다.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는 이념 표출의 수단이 되었고, 혐오와 조롱의 밈(meme)으로 변주됐다.

그건 스타벅스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탱크데이' 이후 스타벅스는 자기 이름이 어떤 맥락 안에서 발화될지 결정할 권한을 잃었다.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의미는 오염되고, 이름은 조롱받고, 고객은 뭔가 꺼림칙하다.

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는 역사를 부정하면서 민주주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표현의 자유'는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또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헌법의 서사를 부정하는 표현의 자유는 성립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필요 없다"라는 표현의 자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헌법은 우리 공동체가 합의한 최고의 서사 체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공동체가 함께 만들고 믿어온 서사다.

중세 필경사들은 양피지가 귀해지자, 기존 글자를 긁어내고 그 위에 새 글을 덧썼다. 여러 겹의 글이 포개진 이런 문서를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라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껏 긁어내도 밑 글자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지운 글자가 불현듯 되살아났다. 팔림프세스트는 스타벅스를 바꾸지 못한다. 이제 낡은 양피지를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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