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필수의약품인 항암제 공급 부족이 잇따르고 있다. 이 항암제들은 백혈병, 유방암 등 환자들에 널리 쓰이는데 공급에 차질이 생기며 암 환자들의 치료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의약품 공급 안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독산주' 등 항암제 공급 부족 사태 잇따르며 의료현장 비상
23일 의료계, 제약업계에 따르면 부광약품의 항암제 '엔독산주'(성분명 시클로포스파미드) 500㎎의 공급 부족 사태가 지난 12일부터 발생했다. 엔독산주는 악성 림프종과 다발성골수종, 백혈병, 유방암 등 7개 적응증에 사용되는 국가 필수 항암제로 동일 성분의 대체제가 없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수입 후 실시한 품질시험(무균시험) 기준일탈에 따른 출하 보류 때문에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며 "즉시 최우선으로 품질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며, 11월 내에 공급 부족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국화이자제약이 수입하는 항암제 '화이자시타라빈주'(성분명 시타라빈)는 지난 8월부터 공급 부족 상태다. 이 약은 급성백혈병, 적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급성전환기, 일부 고형암의 병용 항암요법에 사용된다. 공급 부족에 따라 일부 환자에서 치료 일정 조정 또는 치료계획 변경이 필요할 수 있다. 인도에 위치한 제조공장에 침수가 발생하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제품 공급이 중단됐다. 한국화이자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약 2년 2개월 후인 2028년 12월31일 공급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약 중 시타라빈 성분은 화이자시타라빈주가 유일하다. JW중외제약이 같은 성분의 '중외시타라빈바이알주사액'을 제조했었으나 2023년까지만 만들고 생산을 중단했다.
화이자제약 관계자는 본지에 "시타라빈은 다양한 혈액암 치료요법에 사용되는 중요한 의약품으로, 회사는 공급 차질로 인한 환자 치료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글로벌 차원에서는 기존 제조시설의 안전한 복구와 운영 재개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글로벌 제조 네트워크 내 대체 제조시설 및 제3자 위탁생산 가능성 등 공급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암제 부족으로 의료현장도 비상이 걸렸다. 정경주 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 약제팀장(한국병원약사회장)은 "필수 항암제들의 공급이 잇따라 끊기면서 힘든 상황"이라며 "엔독산주는 많이 쓰이지만 대체 의약품이 없는데, 공급이 없으면 엔독산주를 쓴 항암 치료 프로토콜은 못 쓰게 된다"고 말했다.
보건안보 위해 정부가 선제 대응해야…필수약 약가 현실화, 국산 원료 우대, 생산역량 확보 등 필요
지난 5월에도 항암제 공급 불안이 이어진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호지킨 림프종은 적절 표준치료를 받으면 높은 완치율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핵심 약제인 '다카바진'이 올해 7월 공급 중단 위기에 놓였고, 시스플라틴, 블레오마이신 같은 기초 항암제도 반복적인 공급 불안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필수 항암제 약가 현실화와 원가 보전 △국가 차원의 선제적 비축 시스템 구축 △민관 합동 상설 협의체 운영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의약품 공급중단·부족 보고는 연간 수백건 이뤄지고 있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는 135건, 지난해에는 338건의 의약품 공급중단·부족이 보고됐다. 허 의원은 "공급중단 보고 품목은 정부가 실제 시장 공급 여력을 점검해야 한다"며 "채산성이 떨어지는 필수의약품은 약가 현실화와 주문제조 확대 등 정부가 먼저 개입하는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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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의약품 공급망 확보, 보건안보 차원에서 국내 생산 원료의약품을 쓰는 경우 자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이라도 약가를 우대하는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며 "필수·희귀난치 의약품의 모든 공급망을 들여다보고 방안을 제시하는 게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의약품 수급 불안은 단일 원인이 아니라 채산성, 원료·해외제조 및 수출 중단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원인별 맞춤 대응이 필요하다"며 △약가 현실화 △생산원가 변동 약가 적기 반영 △정부의 필수의약품 생산비 보전 △핵심 원료의 국내 생산시설과 기술 확보를 위한 R&D(연구개발)·설비 투자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안보 차원에서 원료의약품을 국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한 축으로 보고, 핵심·필수 원료의 국내 생산 역량을 적극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