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명풍여행지를 가다]전남 여수 금오도·순천 송광사

◇바다에 연해 있는 먹먹한 아름다움 금오도 비렁길
여수에서 뱃길을 따라 1시간 20분 정도 가면 보이는 금오도(金鰲島)는 '자라를 닮은 섬'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오도는 예전부터 원시림이 잘 보존된 곳이었다. 어찌나 수풀이 우거졌던지 섬 전체가 검게 보였다 하여 '거무섬'이라 불리울 정도였다. 고종은 금오도를 명성황후가 살고 있던 명례궁에 하사하고 명례궁에서는 이곳에 사슴목장을 만들었다. 명성황후는 누구보다도 금오도를 사랑했다고 한다.
금오도는 어떤 섬보다 바다가 아름답다. 길 열풍이 불면서 이곳에도 길이 생겼다.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뜻하는 비렁길이 그것. 함구미마을 뒤 산길에서 시작해서 바다를 끼고 섬을 한바퀴 도는 비렁길은 원래 주민들이 땔감과 낚시를 위해 다니던 해안길이었다. 비렁길의 총 길이는 8.5km. 함구미선착장에서 용두 두포 굴등 직포까지 가는 3시간 30분 정도의 오붓한 산책 코스다.
비렁길은 무엇보다 길마다 보이는 해안 풍경이 일품이다. 태곳적 풍경처럼 기암절벽이 눈을 돌리는 곳마다 따라온다. 잠시 바다가 보이지 않으면 가녀린 소사나무 이름없는 야생화가 연신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 험한 길은 목재 데크를 놓아서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길의 중간쯤에는 옛날 미역을 널어 말렸다 하여 붙여진 미역널바위가 보인다. 바위위에는 손짓하는 여인네의 손 모양처럼 고운 조각 작품하나가 놓여있다. 이 바위에는 작은 무덤 하나가 터를 잡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자손의 번창을 위해 바둑혈인 이곳에 묘를 썼으나 바다 위로 퍼져 나오는 청량한 소리를 듣고자 바둑돌들을 모두 바다로 던져 버려 그 기운이 다하게 되었다 한다. '바둑돌' 이었던 작은 섬들은 반짝거리며 제 모습을 뽐낸다.
미역널 바위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는 송광사의 옛터가 보인다. 보조국사 지눌은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해 비둘기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빈절터만 있지만 한때는 흥성했을 절터의 모습은 왠지 쓸쓸하다.

굴등전망대까지 제법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산책으로 시작했지만 두 시간 넘게 걷다보면 그리 만만치 않은 길임을 느끼게 한다.
비렁길이 아름다운 것은 단지 바다와 벼랑만 있기 때문은 아니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의 삶까지 품고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방파제가 연해 있는 곳에 검푸른 미역들과 톳이 속살을 내밀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푸른 물결 사이로 소나무가 보인다. 직포마을이다. 비렁길의 끝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배에 오르면 금오도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여린 손을 내밀어 작별을 고한다.
▶금오도 가는 길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가는 배는 하루 3번 금오도 함구미로 바로 갈 수 있다. 출항시간은 6시10분 9시40분 14시 20분이며 소요시간은 1시간20분(요금 1만2650원)
061)665-0011
돌산 신기항에서는 7시45분부터 7회 운항하며 소요시간은 20분(요금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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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천년 고찰의 위풍당당
불교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한다.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가 그것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양산의 통도사가 불보사찰이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가 법보 사찰이다. 송광사는 스님이 보물인 곳이다. 무려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내뿜는 기상부터 남다르다.
청량각에서 500m 정도를 오르면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 앞에는 송광사의 역대 고승 및 공덕주의 비석들이 있다. 일주문에는 돌짐승의 형태가 남아 있지만 그것이 원숭이 인지 사자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유서깊은 사찰 답게 송광사는 종고루를 비롯해 천왕문 해탈문 대장전 법왕문 등 다양한 유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고 현재는 종고루만 재건되어 남아 있다.
송광사는 비렁길에서 보았던 터만 남은 송광사와 같은 전설을 공유한다. 송광사는 무소유 법정스님이 불일암이 머물렀던 인연 때문에 많은 불자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연못위에 홍교가 있고 누각이 세워져 있다. 불교건축 양식에 문외한이지만 우화각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저 스치고 지나가기 아까울 정도다.

송광사의 건축물들은 우람하지는 않지만 대단히 아기자기하다. 산능선을 닮은 듯 부드럽고 간결하다. 송광사에서 유명 스님들이 줄이어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산을 닮은 절 절의 부드러움을 품은 스님이 함께 하니 저절로 고승이 배출된 것이다.
대웅보전은 지붕이 특이하게 생겼다. 앞에서면 마치 두 개의 건물이 포개져 있는 듯 느껴지지만 옆에서 모양 마치 M자 모양으로 기와가 이어져 있다. 대웅전을 돌아 뒤편에는 관음전이 있다.
용 두 마리가 지키는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좌우에는 태양과 달이 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는 것이란다. 벽화에는 정일품 정이품 등의 문신들이 깊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있다.

대한제국이 무너져가던 시절 황제내외는 절을 찾아 나라의 재건을 빌고 빌었다.
승보사찰답게 송광사는 다른 어떤 절보다 선을 닦는데 전력을 다한다. 삼일수심이라는 벽화에 참선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삼일수심은 삼일수심재보 백년탐물일조진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먼지와 같다" 에서 나온 말이다. 죽비를 들고 참선에 게으른 스님을 견책하는 그림은 송광사다운 모습이다.
길을 돌아 나오는데 어느 덧 긴 그림자 부지런히 뒤를 쫓는다. 목탁소리 그윽하고 독경을 외우는 소리는 계곡마다 가득하다. 하루를 살아도 해탈을 하고야 말겠다는 스님들의 작은 울림이 가슴속에 담겨 세속의 때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