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있는 밥상]이 구차하고 비루한 삶이라니

[오인태의 詩가있는 밥상]이 구차하고 비루한 삶이라니

오인태 시인
2013.07.29 07:33

<31>추탕과 검은콩두부, '정경'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여태 살아오면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때가 대학 다니던 시절이 아닌가 싶네요. 그땐 술이래야 대개 식당에서 공짜안주로 마시는 막걸리였는데,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지요. 낮술도 예사였고요. 어느 정도 마셨냐 하면 그렇게 안주 없이 마신 외상술값이 졸업 무렵엔 무려 백만 원이 넘었고, 월급날이면 택시를 ‘대절’해서 외상술값을 ‘수금’하러 다니던 버들식당 쥔장이 차압한 제대증을 찾기 위해 졸업하면서 얼마를 갚고도, 몇 년 동안 박봉을 쪼개 갚았으니까요.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월급이 이십만 원도 채 안 되던 시절이었지요.

내가 소위 ‘81학번’인데요, 당시 교대가 2년제였기 망정이지 4년 동안 그렇게 마셨더라면 아마 일가도 이루기 전에 패가망신했든지, 폐인이 되었든지 했겠지요. 하긴 졸업하고 발령 받고서도 그 주력은 여전했으니까요. 5공이 막 출범한 81년부터 87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까지 그 암울한 시기를 술이라도 마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이렇게 스스로 위로해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제 생애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그때, 대통령이 전두환이고, 5공의 슬로건이 ‘정의사회 구현’이었지요. 그리고 당시 신군부가 주축이 된 여당이 ‘민주정의당’이었던 거고요. 5공 청문회에서 그 전두환을 매섭게 몰아붙여 일약 스타로 떠올라 마침내 대통령까지 된 분이 바로 노무현이었던 건데요.

노무현 참여정부 대변인이었던 천호선씨가 ‘진보정의당’에서 ‘진보’를 뺀 ‘정의당’의 대표가 되었다면서요? 정의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이 설마 ‘정의사회 구현’은 아닐 테지만, 기껏 지어낸 당명이 하필 ‘정의당’이라니, 다만 역사의 아이러니로 보아 넘기기엔 어느 당이랄 것 없이 지금의 야당들이 하나같이 지질하고 비루해보여서 말이지요.

여전히 관속의 그를 팔아먹고 사는 부류들이나, 죽은 그를 다시 죽이면서까지 정치생명을 잇고자 몸부림치는 부류들을 보면, 죽음보다 더 비루하고 구차한 삶이 외려 눈물겹기도 합니다만.

비 오는 날, 길바닥에 떨어지던 어린 날의 그 미꾸라지는 정말 승천을 꿈꾸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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