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아, 아름다운 지리멸렬함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아, 아름다운 지리멸렬함

오인태 시인
2013.11.25 07:37

<81>김장김치수육보쌈 그리고 '첫눈'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거인들이 가고 없는 이 황량한 시대에 얼마나 더 지리멸렬하고 구차하고 비루해져야 하는지, 진주에서 학회 마치고 서둘러 내리는 어둑발을 헤쳐 오는데 서러움인지 그리움인지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하지만 그분들의 시대만큼 국론이 통일되고, 국민들이 정치에 무심하면서도 자부심이 넘쳐나고, 일상이 조용했던 적이 있었던가요. 때로는 지청구를 넣기도 하면서, 더러는 격의 없이 육두문자를 날리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어깨에 힘을 넣었던 때가 아니었는지,

좋은 정치란 국민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일, 마침내는 국민들의 저녁을 거룩하고 평온하게 지켜주는 일일진대, 이렇게 매일의 저녁나절이 불안하고, 위태하고, 비루하고, 고단해서야......, 눈이라도 좀 왔으면 싶은데요.

아, 첫눈이 왔다고요? 왔는데 좀 지리멸렬했다고요? 그래도 어김없이 오셨으니 얼마나 다행한가요. 이렇게 부서지고, 흩어지고, 부대끼고 흩날리다보면 폭설이 될 수도 있겠지요. 거기 눈사람처럼 우리 앞에 거인 한 분 떡하니 웃고 서계실지도 모를 일이지요.

누가 김장김치를 두어 포기 줘서요. 모처럼 무쇠솥에 돼지고기를 삶아 수육을 만들었으니 붉은 김치 척 걸쳐 막걸리 한 잔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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