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묵은지돼지목살찜 그리고 '성냥개비'

어쩌다 ‘밥상 차리는 시인’이 됐습니다. 시 쓰는 시인을 두고 밥상 차리는 시인이라니. 생뚱맞기조차 한 이 규정이 마땅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시든지, 밥상이든지, 아니면 둘 다든지 저를 그동안 지켜본 다수가 그렇게 보셨다면 그만한 근거가 있을 테니 어쩔 도리가 없는 거지요. 맞습니다. 저는 밥상 차리는 시인입니다.
제가 작정하고 밥상을 차린 것은 지난 대선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끝내 영웅은 탄생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일순간 말을 잃었지요. 뭐라고 말을 건네야겠으나 마땅한 말이 없더군요.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거의 가장 많은 정치적 발언을 한 사람이 저였는데 말입니다. 제 입을 바라보며 희망을 걸었던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팠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고 말 수는 없었지요.
우선 제 삶의 중심부터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일상의 궤도를 점검하여 바로 잡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녁밥상’을 차렸습니다. 제 일상의 민낯을 세상에 그대로 내보였지요. 이유는 간명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거였습니다.
저녁밥상을 차리면서 일상은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고 평온해졌지요. 일상이 회복되었다는 것만큼 확실한 치유의 징표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제 시와 밥상을 통해 위안 받았다면 아마 그것은 일상의 건재함에 대한 안도감 때문일 것입니다. 대리만족일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한 시인이 늘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어김없이 시와 밥상을 차려 내놓는 것을 보며 안도하고 위안을 얻으셨다면 제 선의는 제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