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6년만의 미니음반…1인 아카펠라·한국어 가사 재발견 등 특별한 '실험'의 연속

이 달변가는 도대체 2시간이 넘는 인터뷰동안 지치는 법이 없었다. 단 한번도 같은 단어를 입에 달지 않는 것은 물론, 즉석에서 무슨 말을 내뱉은 것 같은데도 논리정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지난 2012년 담낭영 수술로 간의 절반을 떼 내고 쓸개는 아예 적출한 환자의 모습은 더더욱 발견하기 어려웠다.
음반을 냈다하면 거의 ‘폭격’수준의 긴장감을 안겨줬던 ‘마왕’(魔王) 신해철(48). “이번엔 또 무슨 음악을 낼까” 늘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마니아팬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듯 파격과 실험의 음악을 선사해온 그가 이번에도 ‘일’을 저질렀다.
다만 마니아의 품안에 갇혀있지 않고, 대중의 굴레로 한 뼘 더 다가섰다. 그래도 실험은 잃지 않았다.
수술로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겼는지, 10kg 이상 불어난 체중으로 만난 그는 밀도 높은 말과 음악으로 마주 앉은 이의 혼을 들었다놨다했다.
신해철이 그룹 넥스트 6집 이후 6년만에 선보인 솔로 미니음반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는 ‘아하!’하는 기발한 동질감과 ‘오호!’라는 놀라운 이질감을 묘하게 섞인 재청취 욕구 상승의 완성품이다.
“이번 음반만 음악이 날씬해진 셈이죠. 예전에는 좌충우돌해서 자장면 만들어서 뚝배기에 담는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는데, 음악 생활 20년쯤 했으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테고리가 다른 노래들은 한 그릇에 담지 말자는 거죠.”
록 중에서도 가장 센 것만 골라했던 신해철은 새 음반에서 그루브(groove·리듬감)가 물씬 넘치는 펑키(funky)들을 대거 등장시켜 변화를 꾀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프린세스 메이커’(Princess Maker) 같은 노래를 듣다보면, 마치 클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DJ로 깜짝 변신한 로커의 일탈(?)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신해철은 “내 팬들의 태도는 쇼킹한 수준의 곡이 안나오면 싫어하고 화를 낸다”며 “아직도 안한 장르로 덧댔으니 나름 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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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4개 중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곡이 ‘A.D.D.A’(아따). 언뜻 들으면 무슨 악기를 이렇게 복잡하게 썼느냐고 되물을 법 하지만, 모두 신해철 혼자 소화해낸 독학의 결과다. 신해철은 이 곡에서 악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모든 악기를 대체했다. 장르로 구분하자면 1인 아카펠라다. 그는 이 한 곡을 위해 그간 해외에서 공부한 엔지니어, 프로듀서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점점 시스템이 정교해진 요즘 최첨단 음악 레코팅 체계에서 역발상을 꾀해 본 거예요. 같은 시스템으로는 경쟁이 안되니까, 중세시대 구두공으로 전환해 가내수공업 전략을 쓴 셈이라고 할까요. 완전 ‘돌아이’ 짓 한번 한 거죠.”
그렇게 그는 가수가 되고, 베이시스트가 되고, 드러머가 됐다. 분업할 수 있는 모든 악기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담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현재 인터넷에서 화제다.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힘든 그의 원맨아카펠라 실험은 거의 정신분열 수준에서 단행됐다. 마이크 기종을 바꾸고, 녹음 주파수를 흔드는 등 기술적인 변화는 기본, 여기에 각종 악기와 보컬을 담당할 땐 영화속 1인 다역처럼 각각의 인물에 캐릭터를 부여했다.
“베이스에겐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왕따를 당한 친구, 드럼에겐 제주도에서 갓 상경한 어리바리한 친구 등 캐릭터에 개성을 몰입하며 연주하는 식이었어요. 악기를 끝내놓고는 바로 최적화된 사운드 시스템을 손보기 시작했고요. 이번 음반은 축구로 치면 선수로 뛰다 감독을 맡아 치른 첫 신고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음반에서 가장 특이한 건 그의 보컬. 6년 만에 처음으로 보컬 연습을 했다는 그는 바리톤에서 소프라노까지 음역을 죄다 섭렵한다. 150km의 직구만 던졌던 그가 싱커도 던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는 “내가 생각해도 세계적으로 희귀한 보이스”라고 했다.

음반에서 또 주목해야할 부분은 가사다. 지금까지 가사를 ‘기의’(記意)에 의존했던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기표’(記標)에 주목했다.
“이번 음반에서 딱 두 가지만 고려했어요. 두 마디에서 리듬이 춤추지 않고, 한국어와 조합이 안되면 모두 무효라고 생각했어요. 신중현을 위시해 무교동과 미 8군 사단들이 했던 옛날 가요들에 연대 의식을 이번에 처음 느껴본 거예요. 소위 80년대 한국 메탈계를 이끈 ‘파고다 메탈’의 실패도 알고보면 언어, 특히 한국어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경상도 사투리 랩을 넣거나('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페인어로 감칠맛을 내는(‘프린세스 메이커’) 등 언어가 지닌 본질의 미학을 다시 들춰냈다.
새 음반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은 아내에게 전하는 발라드풍의 노래인데, ‘아프지 말아요’라는 평범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가사가 나름 인상적이다.
“옛날처럼 현학적으로 풀고 싶지 않았어요. 일상의 언어가 지닌 제대로 된 가치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거죠. 제 인생의 결론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꿈과 행복을 찾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게임의 룰에서 이기는 방법이니까요. 김창완 선배 말대로 행복은 규정되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2시간이 훌쩍 넘는 인터뷰가 끝나자, 책상 위에는 담배 두 갑이 통째로 비어있었다. 환자라는 염려로 시작된 인터뷰는 담배 연기속 마왕의 넘치는 카리스마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