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독서'…"자유롭게 읽고 지루하면 던져라"

김영하의 '독서'…"자유롭게 읽고 지루하면 던져라"

이영민 기자
2015.09.19 15:27

소설가 김영하 '독서의 괴로움과 즐거움' 강연..노원교양대학서 진행

18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 5회 노원교양대학'에서는 김영하 소설가가 '독서의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이영민 기자
18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 5회 노원교양대학'에서는 김영하 소설가가 '독서의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이영민 기자

"책은 읽다가 언제든지 던져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지루한 책도 끝까지 읽어야 하냐는 여대생 독자의 고민에 대한 소설가 김영하의 해답. 객석에서 안도와 반가움이 섞인 웃음이 쏟아졌다. 김영하는 "전 세계 수많은 다독가들은 집에 있는 수많은 책 중 골라 읽는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청중을 안심시켰다.

18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 5회 노원교양대학'에는 김영하가 말하는 '독서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듣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가득했다. 최근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읽기 시작한 책이 지루해서 고민인 여대생부터 문학 동아리 회원들, 자신이 가르치는 책의 내용에 학생들이 자아 해체를 겪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백발의 교수까지. '독서'라는 주제로 각자의 고민을 지닌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채웠다.

김영하는 책에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물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호출', '검은꽃', '살인자의 기억법' 등 많은 소설을 히트시키고,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자칭 타칭 '최고의 수면 팟캐스트'를 진행 중인 그가 일반적인 책에 트라우마가 있을 리는 없다. 그에게 잊지 못할 정신적 충격을 준 책은 '권장도서'다.

중학교 1학년, 책을 가장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독서부장이 된 김영하는 창의적인 교장선생님의 '이상한 실험'의 관리자로 임명됐다. 교장선생님의 '이상한 실험' 내용은 이랬다. 분단별로 권장도서 목록을 한 권씩 사서 일주일 동안 읽은 후 옆 분단에게 넘긴다. 교장선생님의 희망섞인 목표대로라면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겨우 중1 학생들이 에히리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프란츠 카프카의 '성',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일주일 만에 읽는 것은 무리였다. 돌려 읽다 보니 중간에 책이 분실되기도 했고, 전학 가는 친구도 생겼다. 선생님은 분실된 모든 책의 책임을 독서부장에게 돌렸다.

18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 5회 노원교양대학'에서는 김영하 소설가가 '독서의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이영민 기자
18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 5회 노원교양대학'에서는 김영하 소설가가 '독서의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이영민 기자

책에 얽힌 과거의 상처를 고백한 김영하는 이를 '강요된 리스트의 비극'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독서의 첫 번째 괴로움은 "남이 읽으라는 책을 읽는 것"이라며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강요받게 되면 재미가 반감된다"고 말했다.

김영하는 책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다. 선택의 폭도 넓고 읽다가 언제든지 중간에 멈출 수도 있기 때문. 그는 "혼자 고요하게 자기만의 리듬 속에서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 수 있다"며 "그래서 책은 개인주의적 미디어이자 반역의 기운을 가진 불온한 미디어"라고 말했다. 사실 그도 가벼운 문체로 '무협 학생운동', '대권무림' 등을 쓰며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강제성은 책이 가진 불온함과 맞지 않는다"며 "책은 남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을 갖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알던 세계와 너무 달라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책은 트로이 목마처럼 독자의 머릿속에 들어와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생각하는 방식을 뒤흔든다. 김영하는 이런 책의 영향력과 맞서는 괴로움을 독서의 두 번째 괴로움으로 꼽았다. 그는 "책은 몸에 좋은 종합비타민 같은 게 아니다"라며 "책은 언제 어떻게든 우리 인생의 행로에 영향을 미치는 모험"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분열되고 해체되는 경험을 예감하면서도 용감하게 책장을 펼치는 자,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괴로움과 싸우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존재. 김영하는 독자를 이렇게 정의하며 청중들에게 독자로서의 운명을 멋지게 감당해 나가기를 응원했다.

한 권의 지루한 책 때문에 독서의 결심마저 무너질 뻔 했던 여대생은 새 책을 만나러 간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연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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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기자

국제부에서 세계 소식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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