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세기의 미녀'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타계


'현대판 클레오파트라'로 불리며 할리우드 황금기를 꽃피운 미국의 한 여배우가 5년 전 오늘(3월23일) 향년 79세 나이로 타계했다. 이름 앞에 항상 '세기의 미녀' '만인의 연인' 등의 수식어가 붙었던 이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테일러는 미국 영화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1960~1970년대 이른바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최고의 여배우로 미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던 시기에 맞춰 세기의 연인으로 전세계적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술품 거래상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건너온 테일러의 부모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로스앤젤레스(LA)로 향했다.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그는 10세에 '귀로'를 통해 데뷔, 12세 때인 1944년 MGM이 제작한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를 통해 일찌감치 유명세를 떨쳤다. 이어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소녀는 금새 비평가들과 전세계 남성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매혹적인 여배우로 성장했다. 흰 눈처럼 창백한 얼굴과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 관능적인 자태, 바이올렛 색채의 큰 눈망울, 짙은 속눈썹이 어우러진 미모는 전세계 많은 남성들과 영화팬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는 미모뿐 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났다. 테일러는 1960년 '버터필드8'과 1966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화려한 모습처럼 파란만장했다. 이미 18세에 이혼을 겪었고 26세엔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되기도 했다. 테일러는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과의 두 번의 결혼을 비롯해 7명의 남자와 여덟차례나 결혼하는 등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는 1989년 한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인생에서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선 그의 이름을 딴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라는 이혼 전문지가 창간될 정도였다.
테일러가 맡았던 배역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역할은 '클레오파트라'였다. 이 영화를 통해 두 번이나 결혼한 버튼을 만나기도 했다. 클레오파트라로 테일러는 영화 출연료 '100만달러' 시대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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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엔 '엘리자베스 에이즈 재단'을 설립해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퇴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그는 연기와 연예분야에 대한 공로와 에이즈 퇴치를 위한 활동 등으로 2000년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데임' 작위를 받았다.
테일러는 2004년부터 앓아온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투병 끝에 2011년 숨을 거두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