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 탄생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며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 中)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국립은행 총재, 재무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명실공히 쿠바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혁명가가 되고자 한 마음을 되새기며 1965년 3월 쿠바를 뒤로하고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떠난다.
'영원한 혁명가' '라틴 아메리카의 돈키호테' '베레모를 쓴 제임스 딘' 등의 별명을 가진 체 게바라는 88년 전 오늘(1928년 6월1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중산층 가정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인 의사의 길을 걷는다.
그는 여유가 있을 때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곳을 여행했다. 특히 23살 되던 해인 1951년엔 7개월 동안 오토바이를 이용해 라틴 아메리카를 누빈다. 이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꾸게 한다.
체 게바라는 여행기간 내내 억압과 부정, 빈곤과 체념으로 짓눌린 남아메리카 민중들의 실상을 목격한다. 그는 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훗날 책으로 출간된 일기장에 낱낱이 기록한다. 이때 그는 수탈당하는 민초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해결책은 혁명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결국 1953년 체 게바라는 어머니에게 "아메리카의 병사가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회주의 혁명이 벌어지던 과테말라로 떠난다. 이듬해 멕시코로 옮겨 쿠바 독재정권을 전복시킬 준비를 하고 있던 카스트로를 만났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1956년 쿠바에 상륙해 게릴라 활동을 펼치다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고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다. 그는 주요 요직을 맡고 공산권과 제3세계를 다니며 제국주의·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그러던 그는 1965년 '쿠바에선 모든 일이 끝났다'는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후 체 게바라는 콩고에서의 혁명 지원활동에 실패하고 남아메리카 최빈국인 볼리비아에서 새로운 혁명을 꿈꾼다.
그는 1966년 11월 볼리비아에 도착해 혁명의 거점인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펼친다. 그러던 중 1967년 10월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총탄에 맞고 체포된 뒤 사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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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 후 그의 시체가 정부에 의해 언론에 공개된다. 체 게바라를 하찮은 인간으로 보이게 하려는 볼리비아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모습이 예수와 비교되면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게 된다. 그의 시신은 30년 뒤 볼리비아에서 발굴돼 쿠바에 안장된다.
치열한 삶을 죽음 전까지 관철시킨 그의 생애는 사후 '체 게바라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생길 만큼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중남미 대부분 지역에서 내전과 군부 독재는 종식된 현재까지도 체 게바라는 중남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