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 정운현의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독립운동가 때려잡던 악질 매국노 44인 이야기"

"대동아공영권의 가장 건실한 신질서를 건설해야만 될 것은 유구한 인류 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중대 사명으로…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용감하게 신체제 건설에 희생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1940년 12월호 '삼천리'에 실린 이 글은 일제의 만주국 건설에 조선인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선근(1905~1983)으로, 해방 후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문교부 장관(오늘날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서울대, 성균관대, 동국대 등 국내 여러 대학의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던 저자 정운현의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1999) 개정판이 출간됐다.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라는 새로운 제목을 입은 이 책에는 위에 소개한 이선근 같이 일제강점기에 대놓고 친일 행적을 해 놓고도 멀쩡하게 해방 이후에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일제의 패망 소식을 듣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황국신민의 서사' 제작자로 알려진 김대우는 해방 후 반민특위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된 뒤 1960년 5대 총선에 출마했다. 일제 '문화정치'의 조력자였던 언론인 진학문은 일제강점기 조선 내 친일 기업인 및 각계 친일파들과 교류하며 상류층으로 지내다 해방 후 전경련 상임 부회장, 이민공사 사장 등을 지내며 경제계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친일파들의 행적은 분노를 유발한다. 조선인 가운데 일제에 반항하는 지식인 30만 명을 학살할 계획을 추진 중이던 재일 친일파 박춘금 등 같은 민족을 대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악을 실행하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의 행적도 분노를 일으키지만, 악행에 대한 단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기가 막히다.
동양에서는 역사를 현재의 거울이라 하여 '사감'(史鑑)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하는 이때, 우리의 선택은 어때야 할까. 친일파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 그저 지식의 축적을 위해서가 아닌, 현재의 선택을 위해서다.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정운현 지음. 인문서원 펴냄. 380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