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은 100여년 전 '부동산 개발'로 조성됐다

북촌 한옥마을은 100여년 전 '부동산 개발'로 조성됐다

구유나 기자
2017.02.04 06:46

[따끈따끈 새책]'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식민지 경성을 뒤바꾼 디벨로퍼 정세권

가회동, 삼청동에서 익선동에 이르기까지. 서울 시내 한옥마을이 언제 어떻게 조성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1920년대 경성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곳에는 경성의 '건축왕'이자 조선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자)라 불렸던 정세권이 있었다.

정세권은 1919년에 20칸짜리 한옥 두 채 가격인 2만 원을 갖고 상경했다. 때는 바야흐로 일제 강점기. 경성은 급격한 도시화와 밀려드는 일본인으로 인해 주거난을 겪고 있었다. 정세권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왕실과 귀족층으로부터 대규모 토지나 택지를 매입한 후 이를 쪼개 10~40평형대 소형 한옥 여러 채를 대량 공급하기로 했다.

정세권은 사대문 안 종로 이북에 터를 잡고 1920년 9월 건양사를 설립했다. 건양사는 토지 매수부터 기획, 설계, 시공, 그리고 금융 사업까지 담당했다. 건양사는 익선동 166번지 개발을 시작으로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 북촌 한옥마을을 만들고 성북동, 서대문, 왕십리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조성했다.

회사 설립 후 10년도 되지 않아 정세권은 조선을 대표하는 부동산 재벌로 거듭났다. '집장사'라는 손가락질도 있었지만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건 아니었다. 그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주택금융모기지 개념인 년부와 월부상품을 개발했다.

정세권은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낙원동 조선물산장려회 회관과 화동 조선어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는 등 물산장려 및 애국계몽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했다. 정세권은 조선어학회 사건(1942)에 연루돼 고문을 당하고 이후 경제사범으로 몰려 재산을 탈취당했다. 이후 건양사는 급격히 쇠락했다.

이 책은 식민지 경성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개척하며 근대 서울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건축왕 정세권을 최초로 기억하는 작업이다. 저자는 당시 건양사의 경성 개발 규모와 방식이 함의하는 도시개발 및 계획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겪은 인간 정세권에도 주목한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김경민 지음. 이마 펴냄. 220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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