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김도연 작가의 소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을 꺼내 읽었다. 직원들과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이해 이야깃거리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오래전에 읽었던 그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설은 학생잡지의 글을 일부 표절해 중학교 백일장에서 입상한 학생이 삼십년 지나 임종을 앞둔 담임선생님과 재회하며 반성문을 쓰는 이야기다. 문득 앞날과 미래만 이야기하고 색다름과 그럴싸함만 좇다가 정작 중요한 어제와 과거를 놓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앉아 예술의전당이 우선해서 떠올리고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1988년 '문화예술의 창달과 진흥, 국민의 문화예술향유기회 확대'라는 원대한 목표 아래 예술의전당이 처음 문을 열었다. 음악당과 서예관에 이어 1993년 오페라하우스까지 관람객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현재의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예술의전당은 공연, 음악, 미술과 서예 등 다양한 예술 형태를 오롯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전문 공간들이 한 자리에 집중된 대한민국 최초의 복합예술공간이다. 지난 30년간 2만 6000여 건의 예술행사를 통해 5200만여명의 관람객이 잊지 못할 감동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무대 위 예술인과 단순 방문객까지 포함한다면 아마도 그 규모는 80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도 매년 300만 명이 찾는다.
예술의전당은 3개의 공연장, 3개의 클래식 콘서트 홀, 2개의 미술관과 서예박물관, 야외공연장과 광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접 혹은 국립예술단체와의 협업이라는 방식으로 예술성 있는 공연과 전시를 기획․제작하는 한편 우수한 국내 예술단체가 관람객과 만날 수 있도록 플랫폼으로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 유명 교향악단과 연주자, 공연단체는 예술의전당의 무대를 제일 먼저 찾고 있으며 세계 유명 미술관과 작가의 전시회 역시 예술의전당 미술관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연을 영상화해 전국 각지에 상영했고 어린이예술단을 발족해 100여 명의 미래 음악 유망주에게 전문적인 실습 기회를 제공했다.
개관 때부터 전속 예술단체를 두지 않고 자체 기획공연과 외부 대관 중심으로 예술사업을 전개하다보니 많은 이해관계자들에 둘러싸여 다양한 지적을 듣게 된다. 예술의전당이 왠지 모르게 방문하기 어렵고 어색한 공간이라는 호소도 여전히 제기된다. 개관 이후 오늘까지 쾌도난마로 성장과 확대만 거듭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이런 많은 걱정과 우려를 안고 신중에 신중을 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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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 쓴 책의 말미에서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내 힘으로 일어서려 하지 않고 목청 높여 울며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버릇이 됐다”고 쓰고 있다. 척박한 과거의 문화지형에서 예술의전당이 축복처럼 찾아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문화예술기관으로 성장했지만 지난 실수와 실패 혹은 혼선을 남의 탓, 환경 탓으로 돌리고 외면한다면 미래 삼십년을 맞이할 자격이 없다. 30년의 기쁨과 함께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