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기업-가난한 직원…잡스의 혁신-팀쿡의 돈놀이

부자기업-가난한 직원…잡스의 혁신-팀쿡의 돈놀이

배영윤 기자
2018.01.27 07:07

[따끈따끈 새책]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vs 경제를 망치는 자

좋은 상품을 만들면 실적은 따라오기 마련일까? 어쩌면 당연한 말인데 요즘은 이 공식대로 '순진하게' 기업을 운영하다가는 최악의 경우, 망할지도 모른다. 좋은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투자해 더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보다 '금융셈법'을 활용하는 쪽이 '돈'을 손에 쥐기 쉬워서다.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은 '금융화'라는 불치병에 병든 모양새다. '전도된 경제' 즉, 실질적인 일을 하는 '만드는 자'(makers, 메이커스)가 '거저 먹는 자'(takers, 테이커스)에게 예속된 경제 체제가 됐다.

저자는 금융이 어떻게 실물경제를 추락하게 만들었는지 파헤친다. 실물경제를 잡아먹은 '괴물'은 다름아닌 '금융화'라고 지적한다. 금융화는 금융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현상이다. 금융은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은 오히려 경제 성장을 돕기 보단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만 봐도 그렇다. 2013년 애플의 새 CEO(최고경영자)가 된 팀 쿡은 170억달러(약 18조원)를 차입했다. 현금을 1450억달러(약 154조원)나 쌓아놓고 이자로만 매달 30억달러(약 3조원)씩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뭐가 아쉬워 돈을 빌린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는 것보다 차입하는 비용이 적게 들어서다. 애플 같은 블루칩 기업은 이자나 수수료 등이 다른 기업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애플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미국에 들여오려면 미국 세법에 따라 상당한 세금을 내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입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빌린 돈은 신제품 개발이 아닌 자사주 매입, 거액의 배당 등 주가를 높이고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였다. 팀 쿡 역시 애플의 대주주다. 애플의 주가는 올라도 명성이 떨어진 건 스티브 잡스의 단순한 부재가 아닌 팀 쿡 식 돈놀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금융공학에 머리를 쓰는 기업은 비단 애플뿐만이 아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금융 자회사 GE캐피탈을 통해 각종 금융 수완을 발휘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리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휴렛-팩커드(HP), 소니, 인텔, 코닥,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모터스(GM), 시스코, AT&T, 화이자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 모두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은 금융 거래, 조세 회피, 금융 서비스 판매 등 어떻게 하면 돈을 잘 굴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세법의 허점을 철두철미하게 이용해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메이커스'는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테이커스'는 고장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해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여기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영자, 정치인, 규제 담당자도 포함한다.

책은 워싱턴과 월가의 정경 유착의 실체를 신랄하게 파헤치면서 세계 자본주의 중심이자 우리가 경제의 표본으로 삼았던 미국 경제에 대한 환상을 깨트린다. 주주가치 우선주의, 금융 주도 성장주의, 효율화 등이 오히려 실물 경제를 좀먹고 있다고 꼬집는다. 현재의 경제 회복이 사실상 '엉터리'라고 비판한다. 경제회복과 임금 상승이 주춤한 데 비해 기업들의 주가는 급증한 건, 경기가 호전돼 물건이 더 팔려서가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고 시설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기 때문이라는 것. 책은 미국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현실에 대입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파이낸셜타임스 부주필과 CNN 글로벌 경제 분석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월가와 워싱턴 고위급 인사 인터뷰 및 심층 취재를 통해 금융화가 저성장과 임금 정체, 빈부격차 확대 조장 등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전한 금융시스템을 위한 규제 방안, 세제 개혁, 일자리 증가를 위한 공공과 민간의 협력, 기업들의 문화적 변화 등 건강한 경제,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 부키 펴냄. 532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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