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조각가, 호암미술관에 새긴 흔적…"70년의 예술 그대로"

구순의 조각가, 호암미술관에 새긴 흔적…"70년의 예술 그대로"

용인=오진영 기자
2026.03.11 15:38
호암미술관 1층에 펼쳐진《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전시 전경. /사진제공 = 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 1층에 펼쳐진《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전시 전경. /사진제공 = 호암미술관

11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넓은 공간 사이사이에 기묘한 모양의 나무 조각이 줄지어 늘어섰다. 장승 같기도, 기둥 같기도 한 조각들은 어느 하나 같은 모양 없이 마치 숲처럼 자유롭게 배치돼 있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독특한 구성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호암미술관이 우리나라의 여성 미술을 대표하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을 회고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를 연다. 재료와 작가가 하나가 되는(합이합일) 과정에서 또다른 존재가 탄생한다(분이분일)는 의미를 담았다. 구순에 이른 김윤신이 70여년의 예술 활동 기간 동안 제작한 1500여점의 작품 중 17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평면과 조각이 어우러지는 조화다. 김윤신을 대표하는 조각 외에도 판화와 회화, 실험적인 평면작품 등 수많은 작품이 집결했다.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평면 추상 작업과 조각을 함께 조망해 김윤신의 조형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대표작인 '합이합일 분이분일' 조각은 나무를 전기톱으로 깎아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김윤신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 남미의 나무를 활용해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했다. 나무 본래의 굴곡은 물론 껍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전해진다.

김윤신 작가. / 사진제공 = 호암미술관
김윤신 작가. / 사진제공 = 호암미술관

돌 조각들도 흥미롭다. 김윤신이 멕시코와 브라질 오지의 채석장에 체류하며 만들어낸 90여점의 돌 조각품 중 대표작을 골라 전시했다. 돌 자체의 거친 표면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작업 흔적과 무늬가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진 작품이 인상적이다. 김윤신은 돌 조각을 계기로 나무 조각 작업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나갔는데,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변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2층 전시장 외부에는 지난해 만들어진 '노래하는 나무 2013 - 16VI'이 있다. 나무조각을 알루미늄으로 캐스팅(주조)해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으로 SF(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할 법한 기묘한 모양을 띄고 있다. 강렬한 색채와 특유의 추상적인 형태가 한 번에 드러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호암미술관은 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가로지르는 김윤신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확장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민속 신앙과 기독교적 신념의 공존, 원시적 조형성 등 여러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김윤신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르헨티나에서 제작되는 등 국제적인 관심도 높다.

김윤신의 돌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89-211'. / 사진제공 = 호암미술관
김윤신의 돌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89-211'. / 사진제공 = 호암미술관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김윤신의 조각은 요즘의 동시대 미술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작가'라는 존재를 느끼게 한다"며 "이번 전시는 순수한 열정과 신념으로 평생을 예술과 하나 되어 살아온 예술가를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올해 다양한 특별전을 연다. 우리나라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이우환의 '실렌티움'을 선보이는 상설전이 진행 중이며 오는 9월에는 '아트스펙트럼 2026'(가제)을 준비한다. 유럽 최대의 아트 센터인 팔레 드 도쿄와 협력해 우리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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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오진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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