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광화문 한글 현판, 과거와 미래의 공존

[기고]광화문 한글 현판, 과거와 미래의 공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2026.03.19 05:30
광화문 한글 현판 예상도. / 사진제공 = 한글학회
광화문 한글 현판 예상도. / 사진제공 = 한글학회

한글은 유무형의 문화유산 가운데 우리 국민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에 한자 현판과 한글 현판을 함께 다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환영한다.

한글은 경복궁에서 태어났고,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은 그 안의 집현전(오늘날 수정전)에서 작성됐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한자 현판만이 아니라 '훈민정음해례본'의 글꼴로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이야말로 우리 문자의 역사, 한글의 속살과 멋을 세계인에게 내보이는 일이다.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일부 문화유산 전문가와 국민들이다. 지금의 광화문은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것을 원형으로 삼았다. 한국전쟁 때 불탄 뒤 복원하여 2010년에 한자 현판을 달았으나, 조선 초의 원형이 아님은 물론이요, 흥선대원군 시절의 현판도 희미한 사진을 디지털 복원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추정해 만들었다. 바탕색과 글씨 색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다가 일본에서 '경복궁 영건일기'를 찾아 2023년에 글꼴은 그대로 두고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 한자 현판으로 바꾸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가상 원형이지만, 복원의 노력은 장하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관리에서 '원형 보존'만이 철칙은 아니다. 문화 강국들에서는 단순한 원형 보존을 넘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루브르 박물관은 1682년에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기 전까지 왕실 궁전으로 쓰였다. 그 뒤 일부가 박물관으로 사용되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대적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한쪽 공간을 사용하던 재무부를 옮기고 루브르 앞 광장에 21.6미터 높이의 유리 피라미드와 지하 출입구를 설치하여 3개 전시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냈다. 프랑스의 상징물 앞에 웬 이집트 유물을 세우냐며 격렬한 반대와 논란이 있었지만, 1989년에 완공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이탈리아도 각 시대의 흔적을 존중하면서 현대적 활용을 더해 관광과 교육을 촉진한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폐허와 보강이 공존하고, 카라칼라 욕장도 폐허를 유지하며 오페라 극장으로 활용한다. 콜로세움은 나무판에 모래를 깔고 검투장으로 사용하던 1층 바닥을 복원하지 않았다. 지하 공간에 예전 무대 아래 있던 복잡한 기계장치와 구조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콜로세움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보다 활용에 방점을 둔 사례이다. 한꺼번에 1500명이 목욕을 할 수 있었던 로마 시대의 대욕장 카라칼라는, 폐허 가운데 남아 있던 벽면을 음악 공연에 쓰는 반사판으로 삼아 무대를 세우고, 바깥에서 보이는 벽체의 안쪽에는 욕장 유적 대신 계단식 좌석을 설치하여 오페라 극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애민 정신, 언어 인권 정신으로 빚어진 한글의 탄생은 어떤 민주시민교육보다도 뇌리에 깊게 박히는 이야깃거리이다. 광화문 한글 현판은 관광 목적의 활용을 넘어서 세계인에게 우리의 문화 정체성을 제대로 알리고, 가장 앞장서서 인류애의 길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뿌리를 보여줄 것이다. 멋진 활용이다. 전문가들의 원형 보존 노력도 소중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뜻과 미래 활용 측면도 반영되길 바란다.

/ 사진제공 = 한글문화연대
/ 사진제공 =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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