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나라의 법률이 대포만 못하다."(만국공법불여대포)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의 수괴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감옥에 갇혔다. 그는 의거 뒤 숨지는 순간까지 만국의 공법(법률)에 의한 동양 평화를 주장했고, 국제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사형을 집행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13일 첫 공개한 안 의사의 글씨 '만국공법불여대포'는 그의 회의감이 담긴 유묵(죽기 전 남긴 글씨)이다. 번지르르한 말로 국제법을 논하더라도 결국은 대포만 못하다는 뜻이다. 힘의 논리보다 평화를 좇던 그의 사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작품은 안 의사의 순국일인 1910년 3월 26일 며칠 전 중국 뤼순감옥에서 씌어졌다. 세로 196.8센치미터(㎝), 가로 44.8㎝ 크기다. 왼쪽에는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고 적혀 있다. 독립을 다짐하며 왼손 약지를 끊었던 그의 손도장도 선명하게 찍혔다.

이 글씨는 뤼순감옥 형무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소장하고 있었다. 구리하라 사다키치는 안 의사의 사상에 감화된 나머지 그의 저서 '동양평화론'을 완성할 때까지 사형 집행을 늦춰달라고 요청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자신을 '평문광생'(평씨 집안의 후손)이라고 밝힌 익명의 인물에게로 글씨가 넘어갔다. 국외재단은 현지 조사를 통해 지난해 이 작품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같은 해 11월 국내로 들어왔다. 직전 소장자는 경매에서 이 글씨를 낙찰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사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진본 글씨라는 점에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빼어나다. 글씨체는 행서(살짝 흘려 쓴 글씨)와 해서(반듯하게 쓴 글씨), 초서(크게 흘려 쓴 글씨)가 모두 섞여 있다. 첫 글자인 '만'을 초서로 쓴 방식은 안 의사의 다른 유묵인 '황금일만냥불여일교자'(황금 백만냥이라도 자식 하나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와도 일치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안 의사의 인간성과 철학을 보여주는 글씨 '일통청화공'도 함께 공개됐다. '날마다 맑고 고아한 대화를 나누는 분'이라는 뜻을 담아 기요타 다카지 뤼순감옥 간수과장에게 준 글씨다. 그는 안 의사에게 인간적인 배려를 제공하며 교감한 인물로 알려졌다.
유산청과 재단은 국외 소재 문화유산을 꾸준히 확보하는 한편, 안 의사의 유묵을 체계적으로 활용·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안 의사의 유묵 중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것은 모두 31점이다. 박정혜 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국외 유산을 적극 발굴·환수해 그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