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DO 광화문클럽] 허태완 전 멕시코대사 강연 '감성을 짓다, 멕시코 건축'

"우리나라는 아직 건설에 머물러 있는 거죠. 사람한테 감동을 주고 행복을 줘야지 건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건축가들이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앞으로 마련되고 제도적으로도 뒷받침이 많이 됐으면 합니다."
제주 서귀포에는 '물의 집'이라는 뜻의 건축물 '카사 델 아구아'가 있었다. 멕시코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제주의 자연을 담아 설계한 공간이었다. 모델하우스 용도로 지어졌지만 건축학도들이 찾아올 만큼 주목받았다. 그러나 국내외의 보존 요구에도 2013년 철거됐다.
허태완 전 주멕시코대한민국 대사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PADO 광화문클럽'에서 '감성을 짓다, 멕시코 건축-바라간과 레고레타에게 바치는 헌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PADO는 머니투데이가 만든 국제시사·문예매거진이다. 광화문클럽은 PADO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공론의 장으로, 매월 여는 클럽데이에서 국제정세와 인문·사회·문화 분야의 전문가 강연과 토론을 진행한다.
허 전 대사는 외교부 중남미국 중남미지역협력과장과 중남미국장 등을 지낸 중남미 전문가다. 주멕시코대사관 공사참사관과 주바르셀로나 총영사 등을 역임했으며 주멕시코대사를 지냈다. 이 밖에도 주러시아·말레이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과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등에서 근무했다.
그가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아쉬워하는 이유는 건물이 지닌 문화적 가능성 때문이다. 레고레타는 물과 빛, 제주의 풍경이 어우러지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허 전 대사는 건축물 곳곳에서 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을 소개하며 보존됐다면 그 자체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사 델 아구아는 건물의 모든 면에서 물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그대로 보존했다면 이 건물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이 왔을 겁니다. 결국 철거돼 앞으로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허 전 대사는 한국이 '건축이 아닌 건설'이라는 시각으로 건물을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같은 땅에 한 채라도 더 짓고, 원가를 낮추는 데 집중하느라 공간의 독창성과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경험은 뒤로 밀리기 쉽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PICK!
반면 멕시코는 설계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허 전 대사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전체 건축비 중 설계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4~5% 수준인 한국보다 높다. 개인 주택을 지을 때도 설계에 적극적이라 멕시코시티의 레포르마 대로에 늘어선 사무용 건물부터 개인 주택까지 서로 다른 형태와 개성을 드러낸다는 게 허 전 대사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멕시코 건축은 어떤 가치를 추구할까. 이에 대해 허 전 대사는 루이스 바라간과 레고레타의 작품을 소개했다. 두 사람을 이해하는 핵심은 빛과 색채, 물이다. 단순한 구조에 자연광을 들이고 분홍과 노랑, 보라 등 강렬한 색을 입혔다. 정원과 물을 생활공간으로 끌어들여 사람이 공간을 감각으로 경험하도록 한다. 기능적인 건물의 뼈대 위에 감정을 입히는 '감성 건축'이다.
"멕시코 건축을 지탱하는 세 가지 힘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대한 대지성과 조형미이고, 두 번째는 벽화 운동입니다. 세 번째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중정과 정원, 물이 멕시코 건축의 특징적인 요소로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간은 1980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은 멕시코시티의 자택 겸 작업실이다. 1948년 지어진 이 집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허 전 대사는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하면서 건축이 사람에게 평온과 안식을 준다는 말의 의미를 체감했다고 했다.
허 전 대사는 해당 주택에서 여백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침실과 식당, 서재와 정원을 따라가면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과는 다른 건축의 목적을 만나게 된다. 빛과 색채, 비워둔 공간이 어우러지며 사람을 머물게 한다.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기능을 넣었는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치다.
"집에서 조용하게 생각하고 사색하고,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여백이 굉장히 많은 미니멀(단순하고 절제된 상태)한 건축물입니다."
강렬한 색의 벽과 물이 대비를 이루는 마구간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레고레타는 이러한 감성 건축의 특징을 호텔과 사무실, 아파트 등으로 넓혔다. 멕시코시티의 카미노 레알 호텔이 대표적이다. 입구부터 물과 선명한 색채가 방문객을 맞는다. 허 전 대사는 내부에 들어서면 호텔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효율과 수익이 중요한 상업시설에서도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허 전 대사는 한국에서도 창의적인 설계를 인정하고 건축가들이 역량을 펼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명 해외 건축가의 작품을 예외적으로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건축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