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싱가폴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고급 인력의 영입을 통해 인구를 현재 수준보다 200만 정도 증가시키려는 야심찬 장기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싱가폴 정부는 이들이 안락하게 살고,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고급 아파트, 사무실, 리조트를 시내 곳곳에 건설하고 있다.
싱가폴은 현재 홍콩과 아시아 금융중심이라는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은 홍콩에 뒤처지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육성을 위한 정부의 노력, 특히 외국 금융기관 유치를 위한 노력은 집요하면서도 체계적이었다.
최근에 도쿄에서 싱가폴로 운용본부를 이전한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설립에서 운영 개시까지 2주 밖에 소요되지 않는 규제의 간편성, 최고 40%에 달하는 일본의 세율에 비해 약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낮은 세율, 영어의 통용을 포함해서 외국인들이 살기에 편한 각종 사회기반시설을 자신을 포함한 많은 헤지펀드들이 싱가폴로 이전하는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미국의 초대형 은행의 현지 지점장이 들려준 얘기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 은행의 싱가폴 지점을 유치하게 위해 정부 당국자가 비행시간만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미국 본사를 10차례 방문하여 지점 개설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싱가폴 정부는 이 은행의 주력 사업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파악하여 싱가폴에 지점을 개설할 경우 이 은행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갈지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지점 개설 이후에도 현재 홍콩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본부를 싱가폴로 이전할 경우에 부여될 구체적인 혜택을 제시하며 지금도 분기마다 정부 당국자가 본사를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싱가폴의 추격에 대응해 홍콩 역시 아시아 금융중심이라는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마침 금년 7월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10주년으로서 도날드 창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홍콩 정부의 출범과 각종 행사를 통해 혹시라도 중국정부가 현재 홍콩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이 예전과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고, 반환 당시 홍콩에 살고 있었던 필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지난 2월에 오랜만에 홍콩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예전과 비교하여 홍콩의 중국화가 상당히 진전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들의 PICK!
고급 호텔이나 상가를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영어가 잘 통용되지 않았고 거의 모든 표지판과 안내문에서 영어는 맨 아래로 밀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홍콩 금융시장에 별다른 장애로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비롯 예전 같지는 않지만 홍콩은 아직도 외국인들이 살면서 사업하기에 그렇게 불편한 도시는 절대 아니었다.
도리어 중국 경제발전을 위한 자금 조달의 통로일 뿐 아니라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나날이 증가하는 개인의 자산을 운용하는 거점으로서의 홍콩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대규모 중국기업들의 기업공개를 통해 작년 홍콩증시의 총 기업공개 규모는 뉴욕증시에 필적하였고, 이에 발맞추어 모건스탠리를 포함한 투자은행들은 홍콩에서의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제2차 금융허브회의를 개최하여 2015년까지 홍콩, 싱가폴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8년이라는 기간 안에 이미 앞서 나간 두 나라를 추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싱가폴은 인도와 동남아 지역과 근접한 지역적 이점을 이용하여 이 지역 경제발전을 위한 자금조달과 새롭게 부상되는 이슬람금융의 중심지로서 금융시장 발전의 방향을 잡았다. 홍콩은 물론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이들과 차별되는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통과를 계기로 논의되는 자산운용 허브로의 육성은 그중의 하나로 고려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제도와 기반여건이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금융연구원이 외국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아시아 금융허브의 요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발표한 보고서는 많은 시사점을 전해주고 있다. 이들이 지적한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는 투명하고 엄격한 법체계이다. 홍콩과 싱가폴이 지닌 가장 큰 강점 중에 하나는 규제체계가 투명하고 간편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체계는 명확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여 금융기관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해소시키고 투자자 보호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지적 사항은 외국인을 위한 전반적인 여건이다. 이는 단순히 영어의 통용을 포함한 생활 여건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특히 외국계 금융기관에 대한 배타성의 해소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금융허브를 목표로 외국계 금융기관의 유치와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을 추진하면서, 외국계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서 큰 이익을 거둘 때마다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이라며 떠들썩한 양면적인 상황을 이곳에서 만난 외국계 금융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아 금융허브를 향한 무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우리는 매우 뒤늦게 그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미 앞서 나가고 있는 두 나라를 보면서 우리도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수립과 추진이 절실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